불교 대백과사전 (813)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과사전] 말법사상의 불교 말법사상의 불교 末法思想-佛敎 말법사상이라 함은 6세기경부터 중국에서 성행된 사상으로 불교의 시대관·역사관을 나타내고 있다. 즉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의 3시사상(三時思想)에 따르면 정법시(正法時)는 정법이 엄존하여 교(敎)·행(行)·증(證) 모두가 빠짐 없이 갖추어져 있으나 상법시(像法時)에 들어오면 증(證)이 없어지고 교와 행만이 있게 되며 다시 말법시(末法時)에 이르게 되면 행과 증(證)은 없어지고 오직 교의 껍데기만 남게 된다고 한다. 이 3시사상 외에 5탁악세(五濁惡世)와 법멸(法滅)사상도 말법관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상말(正像末) 3시(三時)의 연한에 관하여는 경전에 기술이 각각 다르나 정법(正法) 500년, 상법(像法) 1000년, 말법은 1만년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 [백과사전] 지의 지의 (538∼597) 수나라 시대의 불교승. 천태종의 개조(開祖).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자대사(知者大師)의 존칭으로 불리어진다. 형주(荊州)의 화용(華容:湖南省華容縣) 사람. 한때 관직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전란으로 인하여 양친과 친족을 잃었다. 18세에 출가하여 율장(律藏)과 비담(毘曇)·성실(成實)·선법(禪法) 등을 배워 익혔다. 그후 남악대사(南岳大師) 혜사(慧思)의 문중에 들어가 지관법문(止觀法門)·삼론계(三論界)의 교리와 선관(禪觀) 달마선(達磨禪) 등 소위 북방계의 교리를 이어받고 법화삼매(法華三昧)에 의하여 대오(大悟)하였다. 30세에 금릉(金陵)에 나아가 8년간 법화경 등의 강론에 힘썼다. 576년 명리(名利)를 떠나 천태산에 들어가 여기에서 약 10년간 수도 생활을 하였다. 천태교리의.. [백과사전] 길장 길장 吉藏(549∼623) 수나라 시대의 불교 인삼론종(三論宗)의 조사(祖師). 그의 선조는 파르티아(安息國) 사람이다. 금릉(金陵:江蘇省南京市)에서 태어나 출가한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진체삼장(眞諦三藏)을 만나 길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12세 때에 흥황사(興皇寺)에서 법랑(法朗)의 강의를 듣고 이듬해에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회계(會稽)의 가상사(嘉象寺)에서 삼론(三論)을 연구하였으므로 가상대사라고 받들어 일컫는다. 597년(開皇 17)에는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와 문통(文通)을 하였다. 뒤에 수양제(隋煬帝)의 칙명에 따라 양주(楊州)의 혜일사(慧日寺)에 들어갔다가 다시 장안의 일엄사(日嚴寺)로 옮겨 법화경을 연구하였다. 당의 무덕(武德) 초에 10대덕(十大德)의 한 사람으로 뽑혔으나, 얼마 후.. [백과사전] 수·당의 불교 수·당의 불교 隋·唐-佛敎 수·당시대는 중국불교가 새로운 전개를 보이게 된 시대였다. 남북의 분열을 통일한 수(隋), 그 뒤를 이은 당(唐)은 세계사적으로도 공전(空前)의 번영을 이룩하였는데 이러한 통일국가 시대가 새로운 불교를 요청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특정의 경론에 입각한 새로운 종파가 형성되고 중국인 자신에 의한 불교의 체계화·조직화가 진행되었다. 수·당 이전에도 비담종(毘曇宗)·섭론종(攝論宗)·성실종(成實宗)·지론종(地論宗)·열반종(涅槃宗) 등의 종(宗)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존재하였으나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학파(學派)라고 불러야 할 것으로 뒤의 종파와는 다른 것이었다. 학파로부터 종파로의 발전을 촉진한 계기가 된 것은 사원경제의 독립과 교판(敎判)의 확립이다. 삼론종(三論宗)은 아직도 학파적 .. [백과사전] 북위의 석불 북위의 석불 北魏-石佛 북위시대에 건조된 대규모의 석굴불상.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운강석불(雲崗石佛)과 용문석불(龍門石佛)이 있다. 전자는 산시성 다퉁현(大同縣)의 서쪽 20km 지점에 있으며 사문통(沙門統) 담요(曇曜)가 문성제(文成帝)에 상주하여 454년에 건국 이래의 5제(五帝)에 대한 추선(追善)과 참회멸죄(懺悔滅罪)를 기원하여 5굴(五窟)을 열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더욱 큰 것으로 15굴이 만들어져서 이들은 조각사상 운강기(雲崗期)를 형성하게 된다. 둔황석굴(敦煌石窟)의 계통을 이어 받으면서 타쿠바쓰족의 웅혼(雄渾)한 솜씨가 넘쳐 흐른다. 후자의 것은 뤄양천도(洛陽遷都)와 더불어 그 교외에 있는 이수하반(伊水河畔)의 용문산(龍門山)에서 파서 만든 것. 운강의 것과 마찬가지로 선제(先帝)의 .. [백과사전] 육조의 불교 육조의 불교 六朝-佛敎 육조시대라 함은 강남(江南)의 건업(建業:建康)에 도읍을 두었던 6왕조(六王朝), 즉 삼국시대의 오(吳) 외에 동진(東晋), 남조(南朝)의 송(宋)·제(齊)·양(梁)·진(陳)의 시대를 말한다. 육조(六朝)라 함은 강남 땅에서 번영한 귀족정치·귀족문화라는 공통성에 착안한 문화사적인 명칭이다. 육조불교의 특색은 육조문화의 일반적인 특색과 마찬가지로 귀족적·고답적·학술적이었으므로 북조(北朝)의 국가적·주술적·실천적인 불교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남조에는 족벌귀족이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고 제왕 이상의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높은 고전적 교양을 몸에 지니고 현학(玄學)을 숭상하며 청담(淸淡)을 즐겼다. 불교도 이들에게는 방외은일적(方外隱逸的)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유마경(維.. [백과사전] 폐불 폐불 廢佛 중국에서 있었던 불교탄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원·불당·불상·경서를 파괴하고 승려와 니승(尼僧)을 환속시키며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장원(莊園)과 노비를 국가가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불교사상에는 4번의 큰 폐불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法難)'이라고 부른다. 삼무(三武)라 함은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당(唐)의 무종(武宗)을 말하며, 일종(一宗)이라 함은 후주(後周)의 세종(世宗)을 가리킨다. 폐불을 단행하게 된 이유로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으나 표면적으로는 유·불·도 3교, 특히 불교와 도교 양교의 대립항쟁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립을 이용하여 그것을 결정적인 단계로까지 이끌어간 것은 역시 정치적·.. [백과사전] 이혹론 이혹론 理惑論 모자(牟子)의 저서. 저자의 생몰연대는 잘 알 수 없다. 불교에 공명하면서 노자와 유가(儒家)의 오경(五經)을 연구하는 모자를 세상사람들은 사도(邪道)에 빠진 사람이라고 비난하였으므로 이에 답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 이 책이라고 한다.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유·불·도 3교의 조화를 지향하면서 이들의 공통점과 상위점을 밝히고 있다. 불교를 유·도의 양교 위에 놓으려고 하는 저자의 자세는 불교에 대한 양교로부터의 비난공격에 대하여 논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전체는 37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거론된 것은 동진시대 이후에 3교(三敎) 사이에 논쟁이 많던 문제 ― 출가둔세(出家遁世)는 세속의 도덕에 반한다는 윤상문제(倫常問題), 인간의 영혼이 사후에 없어지는지 아닌지에 관한 .. [백과사전] 유·도 양교와의 관계 유·도 양교와의 관계 儒·道 兩敎-關係 불교는 중국의 전통사상인 유교와 민중적인 종교였던 도교와의 사이에서 이것들과의 대립항쟁과 절충융합 등 여러 형태의 관계를 갖지 않으면 안되었다. 유교는 한제국(漢帝國)을 뒷받침하는 정통사상으로서 불교가 수입될 당시에는 이미 움직일 수 없는 확고한 지위에 있었다. 도교는 후한시대의 장도릉(張道陵)에 의하여 기초가 잡히고 노장사상으로부터 여러가지 민간사상을 배워들이고 뒤에는 불교경전의 영향을 받아 도장(道藏)을 이루게 되었다. 유교와 도교와의 관계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최초의 문헌은 삼국시대의 과 이다. 서진시대에는 백원(帛遠)과 왕부(王浮)의 논쟁이 있었는데 왕부는 을 만들어 도교의 우월함을 주장하였다 한다. 3교의 대립은 동진시대 이후 더욱 격화되었고 동시에 격의불.. [백과사전] 교상판석 교상판석 敎相判釋 교상(敎相)·교판(敎判)·판교(判敎)라고도 한다. 수천권에 달하는 많은 경전은 석가 일대의 설법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고 이들을 설법의 형식·방법·순서 및 내용과 교리에 따라 분류·체계화하고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행하는 것. 인도에서는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밟아 성립된 여러 경전이 중국에 수입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성립의 순서에 관계 없이 무질서하게 번역되었기 때문에 중국의 불교 관계자들이 차차 이러한 경전의 기록상 상호모순과 불일치를 느끼게 되어 어떤 것이 과연 부처님의 궁극적인 가르침인가를 판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여기서 일체의 경(經)을 시간적 또는 내용적으로 배열·정리하고 가르침의 깊이와 우열을 독자적인 기준에 따라 체계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남북조시대부터 당대(唐代.. 이전 1 ··· 61 62 63 64 65 66 67 ··· 8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