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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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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타이의 불교 타이의 불교 Thailand-佛敎 타이에는 8세기경에 대승불교가 전해졌으나, 11세기 중반에 미얀마의 아나와라타 왕의 침공과 함께 상좌부 계통의 소승불교가 크게 일어나 대승불교를 쫓아냈다. 그후 13세기 말에는 실론으로부터 상좌부 불교가 수입되어 계율 중심의 소승불교가 타이 불교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국왕은 대대로 불교에 귀의하며 특히 차이크 왕조(1782년 창립)의 라마 1세와 라마 4세는 사원을 건립하고 경전을 편찬하며 승풍(僧風)의 쇄신을 도모하고 불교의 보호와 흥륭(興隆)에 힘썼다. 국민도 불교에 귀의하여 남자는 성인이 되기 전에 한 차례 승적에 들어가 사원에서 수도생활을 체험할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강력한 사회적 전통이 있으며, 또한 사람들은 이러한 수도승을 존경하고 공양하는 것을 무상의..
[백과사전] 미얀마의 불교 미얀마의 불교 Burma-佛敎 오랜 옛날부터 금이 많이 나는 나라로 알려진 미얀마의 불교는, 아쇼카왕의 전도사가 건너가 포교한 것이라고도 하고, 부다고사가 실론으로부터 와서 전도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옛날부터 상좌부 계통의 불교가 전해졌던 듯하며, 후에 대승불교가 성행하였으나 얼마 뒤에 성력숭배(性力崇拜)의 외교적(外敎的) 요소가 가미되면서부터 타락하고 말았다. 11세기에 파간 왕조의 아나와라타왕(Anawarata王)이 국토를 통일하고 성력숭배의 종교를 추방한 다음 특히 계율을 중시하는 상좌부 불교를 남방으로부터 수입하여 보호하였다. 이후에 실론계의 상좌부 불교가 세력을 떨쳐서 파간 왕조 시대의 전성기에는 미얀마 불교의 특색인 불탑(파고다)과 승원(僧院)이 많아지게 되었고, 왕조가 바뀌어도 역대왕..
[백과사전] 부다고사 부다고사 Buddhaghosa 중부 인도 부다가야 지방 사람으로 430년경 실론에 건너간 상좌부 계통의 불교학자. 일설에 의하면 브라만 출신이라고 하며, 불교에 귀의하여 삼장(三藏)을 배웠다고 한다. 실론에 건너간 후 대사(大寺)에 거주하면서 그 절에 소장되어 있는 성전을 파리어로 번역하기를 힘쓰고 또한 파리삼장에 대한 주해를 완성하였다. 만년의 활동에 대하여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인도에 돌아왔다고도 하고, 미얀마로 갔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스리랑카 불교 형태는 이러한 교학자(敎學者)들에 의하여 대략 형성되었다.
[백과사전] 스리랑카 (실론)의 불교 스리랑카 (실론)의 불교 Srie­Lanka-佛敎 서력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의 왕자로 상좌부의 장로였던 마힌다(Mahinda)는 왕명에 의하여 실론섬에 파견되어서 섬의 지배자를 귀의시키려고 아누라다성에 대찰(마하비하라)을 건립하였다. 그의 누이동생 상가미타(Sangamitta)도 비구니가 되어 실론에 건너가 불교를 포교했다고 한다. 이것이 실론에 상좌부불교가 전하여진 최초의 일이었는데 서력 기원전 1세기경에 바아다가마니 아바야왕이 무외산사(無畏山寺)를 건립함으로써 대사파(大寺派)와 대립하게 되고 뒤에 다시 기타림사파(祇陀林寺派)가 분리되어 실론의 불교는 3파가 정립하게 되었다. 5세기가 되면서 부다고사를 비롯한 고학자가 나타나서 교학의 기초가 튼튼해졌다. 보수적인 상좌부불교의 대사파에 대하여 다른 부파..
[백과사전] 남방상좌부의 불교 남방상좌부의 불교 南方上座部-佛敎 아쇼카왕은 포교사를 각지에 파견하였으므로 왕이 귀의하였던 상좌부 불교가 아시아 남방 각지에 퍼지게 되었다. 그 거점이 된 곳은 스리랑카였으나, 현재는 미얀마·타이·캄보디아·라오스 등지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들 지역의 불교는 공통적으로 파리어(巴里語)의 성전을 근본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파리불교라고도 한다. 이것은 비교적 오래된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시불교의 연구를 위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백과사전] 남방불교 남방불교 南方佛敎 아시아의 남방지역에는 일찍부터 불교가 전파되었으나 그 계통과 형태, 지역에 따라 대략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한 미얀마·타이 등지의 파리 불교,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 불교, 오늘날 유적만을 찾아볼 수 있는 캄보디아 불교, 남해 불교의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오늘날 신봉되고 있는 아시아 남방 여러 나라의 불교는 일반적으로 보수적 경향이 강하고 원시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 특색을 갖고 있다.
[백과사전] 인도불교의 멸망 인도불교의 멸망 印度佛敎-滅亡 굽타 왕조(270∼470년경)를 중심으로 하여 최성기를 맞았던 대승불교는 뒤이어 고원(高遠)한 학문과 사상체계로 이론화되어 종교로서 민중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 밀교는 민중의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으나 힌두교적 색채가 강해짐에 따라서 불교 본래의 모습은 희박해지고 다시 좌도화(左道化)되어 타락의 길을 걸음으로써 당시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고 있던 인도 제왕(諸王)의 민족의식과 결부되어 부흥기에 있었던 전통 바라문교-힌두교 앞에서 후퇴를 당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있었다. 특히 12세기말부터 13세기초에 걸쳐 배타적 일신주의를 내건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여 불교의 중심지였던 비하르지 방을 점령하고 밀교의 본거지였던 비크라마시라 사원을 비롯하여 많은 불교사원..
[백과사전] 좌도밀교 좌도밀교 左道密敎 밀교는 바라문교 혹은 힌두교의 지반을 이용하여 퍼지게 되었는데 뒤에는 힌두교의 일파인 시바의 여신 샤크티(性力)를 숭배하는 샤크티파 따위와 결부되어 윤좌예배(輪坐禮拜)와 성적 황홀경 속에서 해탈을 얻으려는 좌도밀교(탄트라 불교)라고 하는 것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애욕과 쾌락을 긍정하고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가르치려 한 것이었으나 인도의 민중 사이에 잠재해 있었던 성(性) 숭배의 신앙과 겹쳐서 비외(卑猥)스러운 성적비의(性的秘儀)에 떨어지는 수가 많았다.
[백과사전] 잡밀·순밀 잡밀·순밀 雜密·純密 초기의 밀교사상에는 제존(諸尊)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으나, 7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이 성립하여 밀교의 이론적 근거가 정비되자 밀교교리의 실천에 의한 성도(成道)가 강조되었다. 이것을 순밀교라 칭하고 그밖의 것을 잡밀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순밀은 금강승(金剛乘)이라고도 한다.
[백과사전] 밀교의 대두 밀교의 대두 密敎-擡頭 인도는 본래 다신교의 나라였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바라문교(婆羅門敎)의 제신(諸神)을 숭배하였으며, 재앙을 막고 복을 받기 위한 요가수행과 성구(聖句)·만트라(眞言)의 구송(口誦), 불속에 물건을 던져넣으면서 하는 여러 종류의 기원 따위가 행해지고 있었다. 노력에 의하여 정각(正覺)에 이를 것을 이상으로 하는 불타의 가르침은 이들과는 배치되는 것이었으나 꽤 오래 전부터 불교 속에 바라문교의 여러 신들이 수호신으로서 받아들여졌고 또 수호주(守護呪) 따위가 독송되고 있었다. 7세기에 들어와서 화엄경(華嚴經) 등 대승불교의 경전을 기반으로 하여 바라문교와 기타 민간종교의 주법(呪法)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밀교가 성립되었다. 밀교라 함은 다라니나 만트라를 욈으로써 마음을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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