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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대백과사전/불교의 역사

[백과사전] 육조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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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의 불교

六朝-佛敎
육조시대라 함은 강남(江南)의 건업(建業:建康)에 도읍을 두었던 6왕조(六王朝), 즉 삼국시대의 오(吳) 외에 동진(東晋), 남조(南朝)의 송(宋)·제(齊)·양(梁)·진(陳)의 시대를 말한다. 육조(六朝)라 함은 강남 땅에서 번영한 귀족정치·귀족문화라는 공통성에 착안한 문화사적인 명칭이다. 육조불교의 특색은 육조문화의 일반적인 특색과 마찬가지로 귀족적·고답적·학술적이었으므로 북조(北朝)의 국가적·주술적·실천적인 불교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남조에는 족벌귀족이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고 제왕 이상의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높은 고전적 교양을 몸에 지니고 현학(玄學)을 숭상하며 청담(淸淡)을 즐겼다. 불교도 이들에게는 방외은일적(方外隱逸的)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유마경(維馬經)과 반야경(般若經) 등이 애호되었다. 격의불교가 성행된 것도 이때였다. 여산(廬山)의 혜원(慧遠)이 사문(沙門)은 방외(方外)의 빈(賓)이므로 세속적 정치권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이 동진(東晋)의 귀족사회에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조시대의 불교는 전반적으로 지배자들의 보호를 받아 정치에 참여하는 자도 나타나게 되었다. 북조에 있었던 폐불도 없었고 왕후귀족에 의하여 웅대한 사원이 건립되어서 불교의 연구시대라고 칭할 만큼 경론의 연구와 강설(講說)이 성하였다. 제(齊)의 태자 문혜(文惠)와 동생 숙자량(肅子良)은 열렬한 불교 신자로서 많은 학승(學僧)을 사우(師友)로 하여 강석(講席)과 법회(法會)를 설치하고 불교서의 편찬사업 등을 행하였다. 양(梁)의 무제(武帝)는 남조의 여러 제왕 중에서도 뛰어난 교양을 갖고 있어서 불교의 교리에도 정통하였다. 그는 스스로 <단주육문(斷酒肉文)>을 저술하고 대사원을 건립하였으며, 무차대회(無遮大會)와 같은 대법회를 10여 차례나 열었다.
육조시대에는 인도와 서역으로부터 속속 역경승이 들어와 중국승과의 협력하에 많은 중요한 경론을 번역하였다.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강량야사(畺良耶舍)·구나 발타라(求那跋陀羅)·진체(眞諦) 등의 외국승과 법현(法顯) 등의 중국승이 활약하였다. 또한 양대(梁代)에는 승황(僧晃)·법운(法雲)·지장(智藏)의 3대법사가 출현하였고 또 불교사가로서 유명한 승우(僧祐)가 나와서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과 <홍명집(弘明集)> 따위의 많은 저작을 남겼다. <고승전(高僧傳)>을 지은 혜교(慧皎)도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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