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236)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과사전] 교종 교종 敎宗 교종이란 불타의 교설 및 그것을 문자로 나타낸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종지(宗旨)를 뜻하며, 불어종(佛語宗)이라고도 하고, 부처의 일심(一心)을 전하는 불심종(佛心宗)으로서의 선종(禪宗)의 입장에서 불교를 판별(判別)하여 교선2종(敎禪二宗)으로 나눈 데에서 비롯된다. 교종은 구체적으로 에 의거한 천태종(天台宗)이나 을 소의(所依)로 하는 화엄종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중국에 있어서의 대표적 교종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선종(禪宗) 이외의 전 불교는 이 교종 속에 포함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백과사전] 정토문 정토문 淨土門 정토문(淨土門)을 확립한 도작(道綽)이 아미타불의 서원(誓願)을 믿고, 그 힘에 의지하여(타력) 죽은 후에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하여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정토문이라고 성도문(聖道門)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을 설명한 것이다. 그는 말법(末法)인 현세에는 성도는 깨닫기가 힘들고(難) 정토(淨土)에는 들어가기 쉽다(易)고 하여 정토문(淨土門)을 선양했는데, 이 난이(難易)의 설은 용수(龍樹)의 의 이행품(易行品)을 도입한 담란의 에, "타락에 의한 왕생은 수로(水路)에 배를 타면 즐겁듯이 이행도(易行道)이다"라고 말한 데 바탕을 두었다. [백과사전] 성도문 성도문 聖道門 정토교(淨土敎)의 도작(道綽, 562∼645)이 그의 저서 에서 석존일대(釋尊一代)의 가르침을 나누어 성도문과 정토문의 2문(二門)으로 판별하고, 자기가 믿는 정토문의 입장을 발양(發揚)시켰는데, 거기에 기술되어 있는 성도문이란 이 땅에서 자기의 능력을 바탕으로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으로, 이미 담란이 에서 '자력(自力)에 의한 수행은 육로(陸路)의 보행의 괴로움과 같이 난행도(難行道)이다'라고 말한 자력(自力)·난행도의 입장을 말한 것이다. [백과사전] 경종 경종 經宗 불타가 역설한 교법으로 알려진 경(經) 내지는 후세의 대승불교도들이 불타가 말한 교법이라 하여 제작한 여러 대승경전은 차례차례 중국으로 전해져 한역(漢譯)되었는데 중국의 불교학자들 사이에서는 번역된 여러 경전을 가치비판적으로 조직·체계화하고 석존이 세상에 나타난 본회(本懷)를 어느 특정한 경전에서 구하여, 그 경전을 바탕으로 일종(一宗)을 확립하는(敎相判釋) 일이 행하여졌다. 이처럼 어느 특정한 경전을 소의(所依)의 경전으로 하여 확립된 종파를 경종(經宗)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지자대사(智者大師) 지의의 5시8교(五時八敎)의 교판(敎判)에 바탕을 둔 을 소의(所依)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天台宗)과, 현수대사(贅首大師) 법장(法藏)의 5교10종(五敎十宗)의 교판에 의거한 을 소의(所依)의 경전으.. [백과사전] 논종 논종 論宗 부파불교 이후, 교법(敎法)의 해석으로서의 아비달마의 발달에 의해서 많은 불교 논서(佛敎論書)가 저술되었으나, 그것이 중국으로 전해져서 번역됨과 동시에 이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그 같은 논서를 바탕으로 한 일종(一宗)이 확립되는 경우도 있었다. 즉, 논서의 강구(講究)를 중심으로 한 학파적인 종파라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논종(論宗)이라는 것이다. 논종으로서는 유부(有部) 법승(法勝)의 , 법구(法救)의 등의 구역(舊譯)을 연구하는 비담종(毘曇宗), 하리발마(訶梨跋摩)의 을 강구하는 성실종(成實宗), 의 고형(古型)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진 에 대한 세친(世親)의 주석 을 강구하는 지론종(地論宗), 유가유식파(瑜伽唯識派)의 입장에서 대승불교의 교리를 조직화한 무착(無着)의 을 강구하는 섭론.. [백과사전] 민중불교 민중불교 民衆佛敎 인도에는 불교 이전부터 카스트라는 계급 제도가 뿌리박고 있었으며, 브라만 계급이 그 최고의 계급이었으나, 기원전 500년경부터 문화의 중심이 동(東)으로 이동함과 함께 신흥왕족·무사계급이 실력을 갖게 되었다. 석존은 이와 같은 시대에 출현한 것으로 불교는 사성평등(四姓平等)을 역설하며 어디까지나 법(法)의 실천에 중심을 두었다. 즉 인간의 존비(尊卑)는 그 사람의 태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에 있음을 역설하고, 만일 누군가 계급을 묻는다면 석자(釋子:석존의 자손)라고 대답할 것을 가르쳤다. 또한 최근,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의 일부가 계급부정(階級否定)의 불교에 개종했다는 말도 있듯이 불교는 본래 민중을 위한 종교였다. [백과사전] 귀족불교 귀족불교 貴族佛敎 불교는 당시 인도에서 행하여지고 있었던 계급제도에 반대 입장을 취한 평등주의에 입각한 것이며, 일부 특권계급의 독점물이 되는 것은 석존의 본의(本意)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교가 교단(敎團)으로서 사회에 존재하는 이상, 교단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재정면의 지원을 필요로 하였다. 이미 석존 재세 당시에 있어서도 기원정사(祇園精舍)나 죽림정사(竹林精舍)라는 승원(僧院)이 유력한 사람들에 의해 기증(寄贈)된 사실이 있고, 그와 같은 유력자나 권력자와의 관련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불교의 전래(傳來) 이래 끊임없이 그때그때의 조정(朝廷)이나 귀족들과 밀접한 관계가 유지되었고, 이같은 외호자(外護者)의 힘에 의해서 많은 사원이 건립되고 승려들이 양성.. [백과사전] 학파불교 학파불교 學派佛敎 불교의 교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주석 해석하여 조직 체계화하고, 다른 학파에 대해서 자기 학파의 우월성·정통성(正統性)을 주장하려고 하는 입장에 서 있는 불교를 '학파불교'라고 한다. 원시불교 시대에는 석존(釋尊)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철학적 문제를 논하는 것을 희론(戱論)이라 하여 배척하였고, 인생에 있어서의 고(苦)로부터의 해탈(解脫)을 지향하는 실천도 속에야말로 불교의 본의가 있다고 보고, 단순히 이론을 위한 이론은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석존이 멸한 후 불설(佛說)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부파(部派)로 분열하게 되자, 아비달마라고 불리는 주석연구(註釋硏究)가 발달하여 불교의 학문적 연구가 양성(釀成)되었다. 또한 초기의 대승불교에서는 실천면이 강조되었으나 차차 교리의 학문적.. 이전 1 ··· 110 111 112 113 114 115 116 ··· 1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