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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대백과사전/불교의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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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지론종 지론종 地論宗 화엄부(華嚴部)의 에 세친(世親)이 주석을 단 을 연구 강술하는 학파를 지론종이라고 한다. 북위(北魏) 선무제(宣武帝) 때, 인도의 승려 륵나마뎨(勒那摩提)와 보리유지(菩提流支)가 각기 이 의 범본(梵本)을 가져다가 번역하였고, 이것을 그의 제자인 광통율사(光統律師) 혜광(慧光)이 화회(和會)해서 1권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 혜광은 상주업도의 대각사(大覺寺)에 살며 지론연구(地論硏究)의 단서를 열고 상주남도파(相州南道派)의 시조가 됐다. 한편 보리유지(菩提流支)의 제자인 도총(道寵)은 업도 북부에 이를 전파하고 상주북도파(相州北道派)의 시조가 되었다. 혜광은 부처 일대의 가르침을 판별하여 돈(頓)·점(漸)·원(圓)의 3교(三敎)로 하고, 을 비롯한 비돈비점(非頓非漸)의 원교(圓敎)에 배속시..
[백과사전] 열반종 열반종 涅槃宗 대승(大乘)의 을 강구하는 학파이다. 40권은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 385∼433)이 414년에 시작하여 전후 8년을 소비하여 421년에 완역했는데, 그 이전에 후진(後秦)의 도생(道生, ?∼434)은 법현(法顯)이 417∼418년에 번역한 6권을 정독하여,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일천뎨(一闡提)도 성불이 가능하다는 천뎨성불설(闡提成佛說)을 제창하여, 이 종(宗)의 선구를 이루었다. 또한 남지(南地)의 혜엄(慧嚴)·혜관(慧觀)·사령운(謝靈雲) 등은 후일 건강(建康)에서 40권본을 6권본에 의거, 수정하여 36권을 만들었다. 이들 도생(道生)·혜관(慧觀) 등 라습(羅什) 문하의 일재(逸材)들이 을 부처 설법의 귀결(歸結)이라고 결론을 내린 이후 수대(隋代)까지 남북 각지에서 통용되었으..
[백과사전] 성실종 성실종 成實宗 4세기경의 하리발마(訶梨跋摩)가 소승비담(小乘毘曇)의 교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파분열의 일파인 경량부(經量部) 입장에서 역설한 체계적 강요서(綱要書)인 의 연구강술을 중심으로 성립시킨 학파이다. 은 구마라습(鳩摩羅什)에 의해 411∼412년에 역출되었고 이후 약 200년 동안 불교 교리의 기초학으로서 그 고구강술주석(考究講述註釋)이 매우 성하여 중국 불교의 교리적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 논에는 대승(大乘) 일반에게 설교되는 "인법2공(人法二空)>이나
[백과사전] 비담종 비담종 毘曇宗 비담은 아비담(阿毘曇)의 약칭이며 아비담은 아비다르마(Abhidharma:阿毘達磨), 즉 논(論)을 말하는 것이므로, 비담종은 소승(小乘)의 논으로서 전하여진 유부 '6족발지(六足發智)' 등 여러 논의 연구강술(硏究講述)을 중심으로 한 학파적인 종파이다. 소승논부(小乘論部)의 한역(漢譯)은 383년에 과 , 즉 간다라계(系)의 , 391년에는 유부 법승(法勝)의 작품으로 소승불교를 간결하게 정리한 , 425년에는 유부의 교의를 대성한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의 , 그리고 426년 이후 3회에 걸쳐 의 주석서로서 법구(法救)의 손으로 이루어진 등이 차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한역에 의한 소승 논서(小乘論書)의 연구가 부진(符秦)의 승가(僧伽)인 제바(提婆)·도안(道安), 동진(東晋)..
[백과사전] 밀교 밀교 密敎 원시불교에서는 금지되어 있었던 세속적인 주술(呪術)이나 비의(秘儀)가 차차 불교 속에 침투되었는데, 특히 재가신자(在家信者)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대승불교에는 그 경향이 강하여 대승경전 속에 다라니라고 부르는 주문(呪文)이 있으며 후일 이것이 하나의 독립된 경전이 되었다. 한편, 부처의 법신(法身)의 가르침도 그 범신적(汎神的) 경향으로 신비주의와 연결되기 쉽고, 그 신비주의적 해석 중에는 불교의 궁극적(窮極的)인 입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대승불교의 새로운 전개로서 금강승(金剛乘)이라고 부르는 밀교의 교의가 성립되고, 7세기경 그 교의를 설(說)한 이나 이 출현하였다. 밀교는 부처의 입장에서의 비밀행(秘密行:三密)이기 때문에 자기수행이라는 면이 적고, 현실긍정적이라는 면..
[백과사전] 유가불교 유가불교 瑜伽佛敎 이 파는 그 밖의 논서(論書)를 저술한 미륵(彌勒)을 파조(派祖)로 하는 인도 대승불교의 학파로서 호흡을 조정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정리(正理)와 상응(相應)하려고 하는 유가행(瑜伽行)의 실천을 행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중관파에서 주장된 반야의 공사상(空思想)에서 아직 불충분한 점을 새로운 심식(心識)의 사고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보충하고, 일체의 존재는 심식의 변전이며 심식만이 실재라고 보는 유식설(唯識說)을 세워 대승의 교리적인 발전을 성취하였다. 이 교설을 이어 받은 것은 무착(無着)이며, 등을 저술하여 유가파의 입장을 확립하였다. 그의 실제(實弟)인 세친(世親)은 처음에는 소승의 경량부(經量部)에 속하여 을 지었으나, 후에는 대승으로 옮겨 ·, 그 밖의 여러 저서를 내고 유가유식(..
[백과사전] 중관불교 중관불교 中觀佛敎 2세기에서 3세기에 걸쳐 활약한 불교사상가 용수(龍樹)는 기타의 논서를 저술하여 반야공관(般若空觀)의 입장에 서서 유무2변(有無二邊)을 벗어난 진공중도(眞空中道)를 선양하고, 그의 문인(門人)인 제바(提婆)는 을 저술하여 외도(外道)나 소승의 교의를 논파하고 그의 제자 라후라발타라(羅候羅跋陀羅)는 의 8불(八不)을 주석(註釋)하였다. 일반적으로 이 계통을 중관파라고 하는데, 이 시대에는 다른 학파와 대립되는 학파가 아니고, 그것이 하나의 학파로서 명확하게 된 것은 5∼6세기에 출현한 부다팔리타(Buddhapalita:佛護) 시대부터이며, 그의 계통은 프라상기카파(Prasangika派:必過性空派)라고 불리며 이를 비판한 바바비베카(Bhavaviveka:淸辨) 계통은 스바탄트리카(Svata..
[백과사전] 대승불교 대승불교 大乘佛敎 인도의 대승불교나 초기 대승경전의 하나하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하는 것은 종래 여러 학자들에 의해 상세한 연구가 행하여졌으나 아직 정설은 없다. 그러나 불타의 입멸 후 400∼500년이 경과한 뒤에는 어느 경전이든 불타가 직접 말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저자는 불타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신자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파불교 중에서 진보적이었던 대중부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불타에게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있어 대승불교운동의 추진 역할을 한 것이라는 설도있으나, 한편 이와 같은 출가(出家) 비구 이외에 재가신자의 집단인 보살단(菩薩團)이 아쇼카왕의 치세(BC 268∼BC 232) 무렵부터 인도 각지의 불타의 유골 위에 세워진 ..
[백과사전] 대중부불교 대중부불교 大衆部佛敎 상좌부가 보수파 장로(長老)들에 의해 형성된 데 대하여, 대중부(大衆部)는 진보파의 혁신적인 사람들에 의해 출발되었다. 결국 불교 교단이 분열되는 계기를 만든 것이 이 진보파에 의한 신설의 제안이며, 부파분열에 있어서 주역을 맡은 사람들이 대중부를 조직한 셈이다. 더욱이 혁신파 비구들의 분파행동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으며, 그 이름도 많은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는 마하상기카(Mahasamghika:大衆部)라고 불리었다. 이 대중부불교는 상좌부가 수행(修行)에 의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것은 모두 불타와 같다는 견해를 취한 데 대하여, 불타는 초월적 인격으로 숭경(崇敬)하고 부처의 육신에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32상(相) 80종호(好)라는 상호(相好)가 갖추어져 있으며, ..
[백과사전] 상좌부불교 상좌부불교 上座部佛敎 불멸 후 100년의 근본분열로 교단은 두 부파로 나뉘었는데 그 중 보수파인 상좌의 사람들에 의한 일파가 상좌부이다. 이 상좌부는 불멸 후 300년 초에 본상좌부(本上座部)와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로 나뉘고 본상좌부는 히말라야 지방으로 옮겨 설산부(雪山部)라고 불리었으며, 캐시미르 지방을 본거(本據)로 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그 후의 분파에 의한 8부의 성립은 모두 설일체유부의 것으로 된 것이며, 따라서 유부는 상좌부계(上座部系) 중에서도 여러 부파 중 최대의 것이 되었고, 후에 일어난 대승불교의 비판·논란(論難)은 거의 모두 이 유부에게 돌려지는 상태였다. 그래서 상좌부불교라고 하면 당연히 설일체유부가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원래 본상좌부(本上座部:雪山部)와 유부는 입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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