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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제9대 달라이 라마 제9대 달라이 라마 룽독갸초(티베트어: ལུང་རྟོགས་རྒྱ་མཚོ་, 1805년 ~ 1815년)는 제9대 달라이 라마이다. 14명에 이르는 달라이 라마들 중 유일하게 유아기 시절에 사망한 달라이 라마이며, 22살이 되기 전에 죽은 첫 달라이 라마이다. 8대 달라이 라마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룽독갸초는 라싸 근처의 사원으로 불려가 다른 후보자들과 함께 승려들에 의해 환생자 여부 심사를 받게 된다. 그는 8대 달라이 라마를 옆에서 보좌했던 승려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았으며, 당시 7대 판첸라마에게도 적합 판정을 받았다. 1808년, 그는 머리를 깎고 정식으로 '룽독갸초'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1810년에, 그가 포탈라 궁에 있는 황금 옥좌에 앉음으로써 그의 치세가 시작되게 된다. 당시 유럽의 ..
[백과사전] 제8대 달라이 라마 제8대 달라이 라마 참빼갸초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하였을 때, 그녀가 살던 마을에서는 유례없는 대풍년이 들어 보리를 무려 3 ~ 4번이나 수확하였으며, 그녀가 집 밖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을 때 거대한 무지개가 내려와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고 한다. 이는 티베트 전통에서 성스러운 존재의 출현을 의미한다. 1758년에 태어나, 아기는 종종 명상 자세를 취하거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6대 판첸 라마가 이 아이에 대한 소문을 듣자, 그는 아이를 직접 확인하고 제7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임을 공포했다. 2살 반의 나이에, 참빼갸초는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에 들어가 라마들과 승려들에 둘러싸여 자라게 되었고, 달라이 라마로서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라싸로 옮겨졌고, 포탈라궁에서 정식 대관식을 치르..
[백과사전] 제7대 달라이 라마 제7대 달라이 라마 게샹갸초는 티베트 동부의 리장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당시, 포탈라궁의 왕좌는 예셰갸초가 창양갸초를 쫓아내고 차지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티베트인들은 예셰갸초를 정식 달라이 라마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예언자들은 게샹갸초가 태어나자 그를 창양갸초의 환생자로 인정했다. 그가 창양갸초의 환생자로 공인받자, 게샹갸초는 살해의 위협을 피해 사원으로 들어갔고, 그 곳에서 제왕교육과 승려교육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다. 1715년, 중국의 강희제는 게샹갸초를 정식으로 인정했고, 이로 인해 예셰갸초와 본격적인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는 12살이 되던 해인 1720년에 정식 달라이 라마로 즉위했고, 이때부터 그의 치세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게 된다. 오이라트인들이 1717년에 티베트로 쳐들어왔고, 예..
[백과사전] 제6대 달라이 라마 제6대 달라이 라마 창앙갸초(티베트어: ཚངས་དབྱངས་རྒྱ་མཚོ, 1683년 3월 1일 ~ 1706년 11월 15일)는 제6대 달라이 라마이다. 인도 동북부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제4대 달라이 라마와 함께 현재까지 몇 안되는 티베트인이 아닌 달라이 라마 중 한 사람이다. 상당히 영민했다고 전해지며, 쾌락, 술, 여자를 좋아하였으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중국 칭하이성 근처에서 행방이 불명되었으며, 학자들은 이를 암살로 추측하고 있다. 그는 시와 노래 짓기를 좋아하였으며, 그가 지은 노래들은 티베트 전역에서 불렸다. 역사 1682년에 제5대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위 승려들은 그의 선종을 숨겼다. 이와 같은 행동은 티베트 내의 소요를 가라앉히고 포탈라궁의 완공을 최대한 순조롭..
[백과사전] 제5대 달라이 라마 제5대 달라이 라마 아왕로쌍갸초(티베트어: ངག་དབང་བློ་བཟང་རྒྱ་མཚོ་, 1617년 ~ 1682년)는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제5대 달라이 라마이다. 제3대 달라이 라마가 권력의 기반을 다졌다면, 아왕로쌍갸초는 티베트 전역에 막강한 영적, 세속적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첫 달라이 라마이다. 그는 보통 '위대한 5대'라고도 불릴 정도로 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티베트 불교와 티베트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탁월한 군사적 식견으로 몽골의 침략을 막아냈으며, 티베트의 내분을 종식시켰다. 티베트의 주권을 되찾아와 중국과 그 외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유럽의 여행자들을 알현해 주기도 하였다. 또한 학문에도 뛰어나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아왕로쌍갸초는 또한 청나라의 순치제하고도 만났다..
[백과사전] 제4대 달라이 라마 제4대 달라이 라마 왼땐갸초(티베트어: ཡོན་ཏན་རྒྱ་མཚོ་, 1589년 ~ 1617년)는 제4대 달라이 라마로, 몽골인의 자격으로 달라이 라마의 자리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다. 생애 1589년 몽골에서 태어났다. 알탄 칸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의 증손자였고, 제6대 달라이 라마와 함께 티베트인이 아닌 몇 안되는 달라이 라마였다. 다만 제6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과 유전적으로 비슷한 인도 동북부에서 태어난 인물이어서, 티베트인의 모습과 혈통을 전혀 닮지 않은 달라이 라마는 왼땐갸초가 유일하다. 티베트의 예언자들은 제3대 달라이 라마의 사망 이후, 그의 환생자가 이번에는 몽골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했고, 왼땐갸초를 찾아낸 이후에는 티베트의 권력자들에게 왼땐갸초의 특징과, 그가 태어난 이후 일어난 상서로..
[백과사전] 제3대 달라이 라마 제3대 달라이 라마 쇠남갸초(티베트어: བསོད་ནམས་རྒྱ་མཚོ bsod nams rgya mtsho, 한자명 索南嘉措, 鎖南堅措, 1543년 ~ 1588년)는 제3대 달라이 라마로, 최초로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사용한 인물이다. 제1대 달라이 라마, 제2대 달라이 라마는 쇠남갸초가 훗날에 추존하여 달라이 라마의 칭호로 불리게 된 것이다. 1543년에 티베트 라싸 부근에서 태어났으며, 전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지목되어 드레풍 사원에서 왕위에 올랐다. 명망높은 스님에 의해 제왕 교육을 받은 후, 드레풍 사원의 주지가 되었으며 그의 명성은 티베트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티베트 지역의 한 소국의 왕이 세상을 떠나자, 쇠남갸초가 직접 장례식을 주재했을 정도로 달라이 라마의 지위가 그의 시대에..
[백과사전] 제2대 달라이 라마 제2대 달라이 라마 게뒨갸초, 혹은 게뒨갸초 팔장포(티베트어: དགེ་འདུན་རྒྱ་མཚོ།, 1475년 ~ 1542년)는 제2대 달라이 라마로, 1475년에 태어나, 1492년에 제2대 달라이 라마의 자리에 올랐고, 1542년에 세상을 떠났다. 게뒨갸초는 생전에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로 불린 적이 없었고, 나중에 제3대 달라이 라마에 의해 제2대 달라이 라마로 추존되었다. 생애 게뒨갸초는 시가체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불교 수행자였으며, 명상자 아내와 결혼하여 그를 낳았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게뒨갸초가 초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지목되며 게뒨 갸초와 가족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게뒨갸초는 그가 입을 떼자마자 그의 이름은 '페마 도르제'라고 말..
[백과사전] 제1대 달라이 라마 제1대 달라이 라마 겐둔 둡빠(티베트어: དགེ་འདུན་གྲུབ་པ།, 웨일리표기 dge 'dun grub pa, 일반 영문 표기 Gendun Drupa, 중국어: 根敦朱巴, 1391~1474)는 제 1대 달라이 라마로, 티베트 불교의 최고 권위자인 달라이 라마의 계통을 창시한 사람이다. 1391년에 태어나, 1447년에 달라이 라마의 자리에 올랐고, 1474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실 겐둔 둡빠는 생존에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로 불린 적이 없고, 후에 제3대 달라이 라마가 추존하여 1대 달라이 라마로 불리게 되었다. 일생 초대 달라이 라마 겐둔 둡빠는 1391년에 티베트 중앙의 고원에서 소를 기르며 유랑하는 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페마 도르지'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7살 때까지 이 이름..
[백과사전] 달라이 라마의 활동 달라이 라마의 활동 1945년 티베트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하는데 성공하였지만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티베트 정부에 대하여 중국의 일부로 편입하면서 갈등이 생겨났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지역자치를 권하였으나 티베트인(人)들이 호응하지 않자 중국은 1950년 여름 무력으로 창두(昌都)를 점령하였다. 이에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는 어쩔 수 없이 중국의 '화평해방'을 받아들여 1951년 5월 티베트 협정에 조인한 뒤, 1954년 티베트 지방정부 주석, 전국 인민대표대회 티베트 대표, 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 등을 역임하게 되었다. 하지만 1959년 3월 티베트에서 반(反)중국 반란이 일어나 총 12만여 명에 달하는 티베트인들이 학살되고, 중국군에 의해 6,000여 개의 불교사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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