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1042)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과사전] 증심사의 역사 증심사(證心寺) 신라 헌안왕 4년(860년)에 철감선사 도윤이 처음 세운 절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선종 11년(1094년)에 혜조국사가 중수했으며 1443년(세종 25) 전라도관찰사 김오(金傲)가 자신의 녹봉으로 낡은 건물을 다시 고쳐지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없어지자 1609년(광해군 1)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 등의 선사들이 다시 지었고, 그 뒤에도 개·보수를 거듭했다. 1951년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전화로 불에 타 없어졌다. 금동석가여래입상(당시 국보 제211호)과 금동보살입상(당시 국보 제212호)은 광주경찰서 금고로 옮겨 보관되고 있었으나 전쟁 중에 유실되어, 국보 지정도 해제됐다. 오늘날의 건물은 1970년에 크게 증축한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백과사전] 전등사의 역사 전등사(傳燈寺)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한국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아도화상이 처음 절을 지을 때는 진종사(眞宗寺)로 명명했다. 고려 고종 46년인 1259년에 진종사 경내에 가궐을 지은 것으로 다시 기록에 등장한다. 고려는 1232년부터 1270년 사이 강화도에 임시 도읍을 정했다. 1266년 진종사는 크게 중창되었으며, 충렬왕 8년인 1282년 충렬왕의 왕비 정신부주(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등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뜻한다. 고려 왕실은 전등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계속해서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조선 광해군 대에 이르러 화재로 .. [백과사전] 자재암의 역사 자재암(自在庵)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서 고려 광종 25년(974) 왕명으로 각규대사(覺圭大師)가 중창했으며, 의종 7년(1153) 화재를 당해 이듬해 각령선사(覺玲禪師)가 대웅전과 요사 일부를 증건했다. 조선 고종 9년(1872) 원공선사와 제암화상이 퇴락된 이 사찰을 44간의 건물로 복원하고 영원사(靈源寺)라 개칭했다. 1907년(순종 원년) 정미의병 때는 이곳이 의병 활동의 근거지였던 탓으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태워졌다. 이후 제암화상과 그의 제자 성파(性波) 스님이 복원하여 원래 이름인 자재암으로 고쳤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폐허가 되어 1961년 대웅전, 1971년에 요사, 1974년에 포교당과 원효대, 1977년에는 삼성.. [백과사전] 임휴사의 역사 임휴사(臨休寺) 신라 경명왕 5년(921년)에 영조(靈照)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휴사는 팔공산 일대에 산재한 고려 태조 왕건의 설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의 공산 전투에서 패해 도망친 뒤 이 곳에 와서 군사를 추스려 쉬어갔다는 전설이다. 왕건이 잠시 쉬어간 절이라 하여 임휴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조선 후기인 1811년에 중창했다. 현대에 와서 2004년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주건물인 대웅전과 산실각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불상과 탱화도 꺼내오지 못한 큰 사고였다. 문화재로는 요사 아래쪽 목재 계단 밑에 조선 시대의 부도 1기가 남아 있는 정도이다. 임휴사는 관세음보살에게 올리는 기도가 효험이 있다 하여 관음기도처로 유명하다. 왕건의 전설에도 팔공산에서 .. [백과사전] 일락사의 역사 일락사(日樂寺) 일락사는 663년(문무왕 3) 의현선사가 세웠다고 하지만 의현선사란 인물을 확인하기 어렵다. 1918년 제작된 「일락사 대웅전 중창기」에 의하면 1487년(성종 18), 1530년(중종 25), 1649년(인조 27)에 걸쳐 여러 차례 중창하였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1957년 토지대장에는 일악사(日嶽寺)로 되어 있어 최근에 일락사로 절 이름이 바뀐 듯하다. 현재 대웅전은 1993년에 건물을 해체하여 원래 자리 오른쪽에 세웠는데 이때 ‘명부전’이란 현판을 달았으며, 이전 자리에는 대적광전을 새로 지었다. 1984년 5월 17일 일락사 대웅전, 일락사 삼층석탑, 일락사 철불이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일락사는 1988년 6월 18일 전통 사찰 45호로.. [백과사전] 은해사의 역사 은해사(銀海寺)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 1년인 809년에 혜철이 창건한 해안사를 시초로 삼고 있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중창하였고, 불교 신자인 문정왕후가 집권하게 된 조선 명종 원년(1546년)에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 자리를 옮겨 새로 짓게 되었다. 이때 조선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이름은 은해사로 고쳤다. 은빛 바다라는 뜻의 은해사라는 이름은 극락정토에 비유하여 지어진 것이다. 조선 영조가 왕자 시절에 은해사를 잘 수호하라며 완문을 지어 보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1270호인 은해사 괘불 탱화를 비롯하여 김정희가 직접 쓴 편액 등 문화재가 다수 있다. 은해사와 인근 지역의 문화재를 전시하는 성보박물관이 2005년에 개관되었다. 은해사의 암자인 거조암, 백흥암 등을 거느리고 있다... [백과사전] 은하사의 역사 은하사(銀河寺) 사찰의 창건 연대는 불분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가야의 수로왕 때 왕후인 허황옥의 오빠 장유가 창건했다고 하며, 당시의 이름은 서림사(西林寺)였다. 이 산 동쪽에는 장유가 또다른 사찰 동림사를 동시에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설 속의 창건 연대가 불교 전래 이전인 서기 1세기라 전설로 생각되고 있다. 사찰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을 토대로 삼국 시대에 창건된 절인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 있던 건물은 동림사와 함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양식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은하사의 대웅전 수미단에는 허황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도 추정되는 쌍어 문양이 있다. 이 문양은 허황옥의 출신지로 기록된 아유타가 인도의 한 왕국이라는 가설에서.. [백과사전] 위봉사의 역사 위봉사(威鳳寺) 백제 무왕 5년인 604년에 서암(瑞巖)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또다른 창건 설화에 따르면 신라 사람인 최용건이 이 곳에서 세 마리 봉황이 노닐고 있어 절을 짓고 위봉사(圍鳳寺)라고 부른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31대본산의 하나로 50개가 넘는 말사를 거느릴 만큼 큰 절이었으나, 일제 패망 이후 급속히 쇠락하여 조계종에서는 제17교구 본사인 김제시 금산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전라북도 북동부 지역의 험준한 산악 지역으로 이어지는 입구 격인 위봉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세가 험하고 절벽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접근이 쉽지 않을 만큼 상당한 오지였다. 1988년부터 오랜 기간 동안 불사를 일으키고 건물을 중창하여 옛 모습을 일부 되찾았으며, 한적한.. [백과사전] 월정사의 역사 월정사(月精寺)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지는 오대산의 중심 사찰이다. 자장율사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산서성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문수보살은 자장율사에게 부처님 정골사리와 가사, 발우를 전해주며 신라로 돌아가 경주 동북방의 오대산에서 다시 볼 것을 말했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율사는 지금의 오대산으로 들어와 임시로 초암을 지어 머무르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3일 동안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유동보살의 화신이라고 전하는 신효거사가 이곳에 머물며 수행했고, 범일국사의 제자였던 신의스님이 자장율사가 초암을 지었던 터에 작은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입적 후 이 암자는 오랫동안 황폐해졌는데 수다사의 유연스님.. [백과사전] 운주사의 역사 운주사(雲住寺) 운주사는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의거해서 이곳 지형이 배형으로 되어 있어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불상 천 위와 탑 천 개를 세웠다 하여 일명 천불천탑이라 한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전해진 사료에는 아직까지 이 점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에 “雲住寺在千佛千塔之左右山背石佛塔名一千又有石室二石佛像異座”란 기록이 있어 현존 석불석탑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사찰경내의 많은 석불 및 석탑은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정교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조성연대는 고려 중기인 12세기 정도로 평가되며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84년 이후 4차례 발굴과 석조불감해체복원, 원형다층석.. 이전 1 ··· 68 69 70 71 72 73 74 ··· 10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