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전체 글

(1236)
[백과사전] 전도 전도 傳道 초전법륜은 불교 전도의 제일성이었으며 동시에 불타의 입멸(入滅)에 이르기까지의 45년간에 걸친 부단한 설법의 시작이었다. 불타는 왕사성(王舍城)과 사위성(舍衛城)을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범위에 걸쳐 설법(說法)을 해나갔다. 불타의 가르침은 심원한 것이었으며 상대에 따라서 문답 형식과 비유·인연설화(因緣說話)를 활용하고 평이한 말로 친절을 다하여 설법하였으므로 차차 제자가 불어나서 경제적으로 불타를 돕는 독실한 귀의자도 나타나게 되었다.
[백과사전] 초전법륜 초전법륜 初轉法輪 성도 후의 불타는 한동안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고 있었으나 얼마 후에 이러한 법락(法樂)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고자 우선 지난날에 같이 고행을 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修行者)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바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을 방문하였다. 그들 다섯 사람은 고행을 그만둔 불타를 경멸하였으나 드디어 불타의 설법에 감화되었다. 이때에 불타는 쾌락과 금욕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의 입장에서 설교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불타가 성도를 한 후 최초로 행한 설법(說法)을 초전법륜이라고 한다. 법륜을 전(轉)한다 함은 법을 설파하고 그 실현에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 초전법륜에 의하여 불타의 제자인 5인의 비구(比丘)가 나타나게 되어 불(佛)·법(法)·승(僧)의 불교 교단 성립조건이 갖..
[백과사전] 보리수 보리수 菩提樹 필발라나무 또는 아슈바타라고도 한다. 불타가 이 나무 아래에 좌선(坐禪)을 하여 정각(正覺:菩提=보리수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불타가 깨우침을 얻은 보리수는 네란쟈나강의 물가에 있었다고 하며, 불타 정각(正覺)의 고사에 관련되어 이 땅을 부다가야라고도 하였다. '보대수'라고도 발음한다.
[백과사전] 성도 성도 成道 불전에 따르면 불타는 35세의 해 12월 8일 이른 새벽(남방불교의 전설에는 바이샤카月의 만월이 된 밤)에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노·병·사의 본원을 단멸(斷滅)하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번뇌(煩惱)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정적(絶對靜寂), 즉 열반(涅槃)의 세계를 체현(體現)한 것이며 올바른 자각, 즉 정각(正覺)을 얻어 눈을 뜨게 된 자, 즉 불타(佛陀)가 되었다는 자기혁신의 일대 전환이었다. 불교는 이 자각을 얻은 자, 즉 불타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백과사전] 고행 고행 苦行 시종과 헤어진 불타는 정발(淨髮)을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구걸을 하면서 남쪽의 마가다국(Magadha國)을 향하여 갔다. 불타가 찾아간 이 나라 수도 라자 그리하(Raja­grha:王舍城)는 당시 정치·경제의 중심지였고 많은 수도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불타는 바라문교의 행자(行者)로부터 요가를 배웠으나 정신적인 만족이 없었으므로 다시 계속하여 마지막으로는 네란쟈나강(Nairanjananati江:尼連禪河) 부근에서 단식과 불면의 고행을 계속하였다. 이 기간이 6년 동안이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육체적인 고행도 효험이 없음을 알고 이를 그만두었다. 이때에, 지금까지 고행을 같이하던 다섯 사람의 수도자가 떠나갔으나 그는 목욕을 하고 심신을 맑게 하여 마을 처녀가 갖다 준 젖과 죽을 마시..
[백과사전] 출가 출가 出家 불타의 출가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중첩되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타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여 그로 하여금 끝내 가족의 애정과 유대관계를 단절하고 왕국을 떠나가게 한 것은 무상한 이 세상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도(道)를 추구하려는 끊임없는 정열이었다. 불전에 있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이야기는 노(老)·병(病)·사(死)·사문(四門)의 무상고(無常苦)에 대한 그의 강렬한 자각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불타는 인생문제에 관한 한 조금도 허술하게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인도에는 도를 닦으려 하는 자는 출가하는 풍습도 있어서 아들 라후라를 얻어 후계자에 대해 근심하지 않아도 된 불타는 29세가 된 어느날 밤에 시종 차닉(車匿)을 데..
[백과사전] 출가 이전의 불타 출가 이전의 불타 出家以前-佛陀 불타는 가비라성의 왕자로 태어났다. 경전에 의하면 그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사파뎨의 손에 자랐다고 한다. 그는 성을 고타마(Gautama), 이름을 싯다르타(Siddhartha)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원성취'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부왕(父王)의 한없는 애정이 담긴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왕자였던 그의 소년시절은 물심양면에 걸쳐 행복하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무예에 관한 교육을 받았으나 명상을 즐기는 폭넓은 성격의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커서 외사촌인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후라를 얻었는데 그는 이때부터 끊임없이 출가하기를 희구하게 되었다. 그 동기는 일찍부터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고 하나 주요한 원인은 궁정생활의 형식적..
[백과사전] 룸비니원 룸비니원 Lumbini園 중인도 카필라바스트(Kapilavastu:迦毘羅城)에 있었던 임원(林園). 불타가 탄생한 성지로 되어 있으며 오랫동안 그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1897년 네팔국의 남쪽 룸민디에서 아쇼카왕이 룸비니를 방문한 기념석주(記念石柱)가 발견되어 그 위치가 판명되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