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236)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과사전] 좌도밀교 좌도밀교 左道密敎 밀교는 바라문교 혹은 힌두교의 지반을 이용하여 퍼지게 되었는데 뒤에는 힌두교의 일파인 시바의 여신 샤크티(性力)를 숭배하는 샤크티파 따위와 결부되어 윤좌예배(輪坐禮拜)와 성적 황홀경 속에서 해탈을 얻으려는 좌도밀교(탄트라 불교)라고 하는 것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애욕과 쾌락을 긍정하고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가르치려 한 것이었으나 인도의 민중 사이에 잠재해 있었던 성(性) 숭배의 신앙과 겹쳐서 비외(卑猥)스러운 성적비의(性的秘儀)에 떨어지는 수가 많았다. [백과사전] 잡밀·순밀 잡밀·순밀 雜密·純密 초기의 밀교사상에는 제존(諸尊)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으나, 7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이 성립하여 밀교의 이론적 근거가 정비되자 밀교교리의 실천에 의한 성도(成道)가 강조되었다. 이것을 순밀교라 칭하고 그밖의 것을 잡밀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순밀은 금강승(金剛乘)이라고도 한다. [백과사전] 밀교의 대두 밀교의 대두 密敎-擡頭 인도는 본래 다신교의 나라였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바라문교(婆羅門敎)의 제신(諸神)을 숭배하였으며, 재앙을 막고 복을 받기 위한 요가수행과 성구(聖句)·만트라(眞言)의 구송(口誦), 불속에 물건을 던져넣으면서 하는 여러 종류의 기원 따위가 행해지고 있었다. 노력에 의하여 정각(正覺)에 이를 것을 이상으로 하는 불타의 가르침은 이들과는 배치되는 것이었으나 꽤 오래 전부터 불교 속에 바라문교의 여러 신들이 수호신으로서 받아들여졌고 또 수호주(守護呪) 따위가 독송되고 있었다. 7세기에 들어와서 화엄경(華嚴經) 등 대승불교의 경전을 기반으로 하여 바라문교와 기타 민간종교의 주법(呪法)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밀교가 성립되었다. 밀교라 함은 다라니나 만트라를 욈으로써 마음을 통일.. [백과사전] 대승불교의 대두 대승불교의 대두 大乘佛敎-擡頭 대승(Mahayana)이라 함은 열반(涅槃)의 피안(彼岸)에 중생을 운반하는 커다란 탈것을 의미한다. 당시 상좌부 계통의 불교는 경전의 훈고·주석에 치우쳐 형식화되었고 승원(僧院)에 있어서의 출가 중심의 고답적인 독선주의에 빠져 있었다. 이를 반성한 혁신적인 비구들과 당시에 성불(成佛)을 이상으로 보살행(菩薩行)에 정진하고 있던 재가(在家) 신자들 사이에 형식보다도 내용을 중시하고 출가와 재가의 구별을 초월하여 널리 사회를 구제하려는 실천적 신앙운동이 대두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타행(利他行)의 실천을 강조하고 출세간적(出世間的)인 자기본위의 전통적 불교를 소승(Hinayana)이라 낮춰 부르고 자기들의 입장을 대승불교라고 불렀다. 대승불교는 불타시대의 근본정신 회복을 지향하.. [백과사전] 카니시카왕 카니시카왕 Kanishka王 중앙 아시아 대월지족(大月氏族)으로부터 일어났던 쿠샨족은 서력 1세기 중반에 서북인도에 진입하여 세력을 확대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카니시카왕은 이 나라의 3대째 왕으로 2세기 전반의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 조로아스터교의 신도였다고 전해지나 후에 불교에 귀의하여 아쇼카왕을 이은 불교보호자가 되었다. 왕의 주변에는 아습박구사(馬鳴)왕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장로 파르슈바(脇尊者)가 있어서 이들로부터 많은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국내 각지에 많은 불탑과 사원을 건립하였다. 쿠샨 왕조 시대의 문화는 그리스·로마·이란 등으로부터 들어온 서방문화와, 중앙과 중앙 아시아에서 온 동방문화의 영향을 융합하게 되었으므로 카니시카왕으로부터 그의 아들인 후비슈카왕 시대에 걸쳐, 문화사상.. [백과사전] 아비달마 아비달마 阿毘達磨 아비달마(Abhidharma)라고 함은 논(論)이라고도 불리는 것처럼 경전의 설명과 주석을 의미한다. 성전으로서의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은 불교가 여러 부파로 분열되기 이전에 일단 성립되어 있었으나 이것에 대한 설명과 주석이 하나의 독립된 형식으로 논장(論藏)으로서 정리된 것은 부파불교의 시대에 들어가서부터였다. 각부파는 자파의 권위를 주장하기 위하여 각각 독자적인 성전을 편찬하게 되었으나 이들은 불타시대의 볼교의 순수성으로부터 멀어진 것으로 되었으며 동시에 종래의 경전에 대하여 쓸데없는 해석학적 경향을 더욱 심회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아비달마적 경향은 불교를 출가 중심의 은둔적 학문불교로 만들어 불타 재세시에 있었던 율동적인 힘을 잃게 하였다. 이러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서 대두한 .. [백과사전] 소승20부 소승20부 小乘二十部 근본2부의 분열이 가져온 분열의 기운은 교리상의 견해, 지도자간의 대립, 지리적 조건 등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되어 불타 입멸 후 약 200년 뒤에는 대중부 계통으로부터, 그리고 그 뒤에 이어서 상좌부 계통으로부터 교단의 파생적인 분열이 촉진되었다. 이 여러 갈래로 분열하는 모습과 파의 이름 그리고 분파의 수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소승20부로서는 대중부 계통으로서 대중부(大衆部)·일설부(一說部)·설출세부(說出世部)·계윤부(鷄胤部)·다문부(多聞部)·설가부(說假部)·제다산부(制多山部)·북산주부 (北山住部)의 9부와 상좌부 계통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설산부(雪山部)·독자부(犢子部)·법상부(法上部)·현주부(贅胄部)·정량부(正量部)·밀림산부(密林山部)·화지부(化地部)·법장.. [백과사전] 근본2부의 분열과 부파불교의 성립 근본2부의 분열과 부파불교의 성립 根本二部-分裂-部派佛敎-成立 불타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하여 행한 제1회결집이 불타의 가르침에 충실하려 하였기 때문에 보수적 경향을 지니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보수적 경향을 가진 장로비구(長老比丘)에 대하여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던 비구들은 불만을 품게 되었다. 제1회의 칠엽굴(七葉窟)에서의 결집에 대하여 부루나(富樓那)가 굴외결집(窟外結集)이라는 것을 열어 이의를 기하였던 것과 같이 불교 교단의 밑바닥에서는 신구의 두 경향이 대립하게 되었다. 불타입멸 후 110년경 진보파의 비구 발도자(Vajjiputtaka)는 계율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내세웠으나 상좌장로들은 이를 배척하였다. 이리하여 양자간의 틈은 더욱 벌어져서 진보파의 비구들은 마침내 자파들.. 이전 1 ··· 124 125 126 127 128 129 130 ··· 1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