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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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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논종 논종 論宗 부파불교 이후, 교법(敎法)의 해석으로서의 아비달마의 발달에 의해서 많은 불교 논서(佛敎論書)가 저술되었으나, 그것이 중국으로 전해져서 번역됨과 동시에 이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그 같은 논서를 바탕으로 한 일종(一宗)이 확립되는 경우도 있었다. 즉, 논서의 강구(講究)를 중심으로 한 학파적인 종파라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논종(論宗)이라는 것이다. 논종으로서는 유부(有部) 법승(法勝)의 , 법구(法救)의 등의 구역(舊譯)을 연구하는 비담종(毘曇宗), 하리발마(訶梨跋摩)의 을 강구하는 성실종(成實宗), 의 고형(古型)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진 에 대한 세친(世親)의 주석 을 강구하는 지론종(地論宗), 유가유식파(瑜伽唯識派)의 입장에서 대승불교의 교리를 조직화한 무착(無着)의 을 강구하는 섭론..
[백과사전] 민중불교 민중불교 民衆佛敎 인도에는 불교 이전부터 카스트라는 계급 제도가 뿌리박고 있었으며, 브라만 계급이 그 최고의 계급이었으나, 기원전 500년경부터 문화의 중심이 동(東)으로 이동함과 함께 신흥왕족·무사계급이 실력을 갖게 되었다. 석존은 이와 같은 시대에 출현한 것으로 불교는 사성평등(四姓平等)을 역설하며 어디까지나 법(法)의 실천에 중심을 두었다. 즉 인간의 존비(尊卑)는 그 사람의 태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에 있음을 역설하고, 만일 누군가 계급을 묻는다면 석자(釋子:석존의 자손)라고 대답할 것을 가르쳤다. 또한 최근,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의 일부가 계급부정(階級否定)의 불교에 개종했다는 말도 있듯이 불교는 본래 민중을 위한 종교였다.
[백과사전] 귀족불교 귀족불교 貴族佛敎 불교는 당시 인도에서 행하여지고 있었던 계급제도에 반대 입장을 취한 평등주의에 입각한 것이며, 일부 특권계급의 독점물이 되는 것은 석존의 본의(本意)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교가 교단(敎團)으로서 사회에 존재하는 이상, 교단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재정면의 지원을 필요로 하였다. 이미 석존 재세 당시에 있어서도 기원정사(祇園精舍)나 죽림정사(竹林精舍)라는 승원(僧院)이 유력한 사람들에 의해 기증(寄贈)된 사실이 있고, 그와 같은 유력자나 권력자와의 관련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불교의 전래(傳來) 이래 끊임없이 그때그때의 조정(朝廷)이나 귀족들과 밀접한 관계가 유지되었고, 이같은 외호자(外護者)의 힘에 의해서 많은 사원이 건립되고 승려들이 양성..
[백과사전] 학파불교 학파불교 學派佛敎 불교의 교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주석 해석하여 조직 체계화하고, 다른 학파에 대해서 자기 학파의 우월성·정통성(正統性)을 주장하려고 하는 입장에 서 있는 불교를 '학파불교'라고 한다. 원시불교 시대에는 석존(釋尊)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철학적 문제를 논하는 것을 희론(戱論)이라 하여 배척하였고, 인생에 있어서의 고(苦)로부터의 해탈(解脫)을 지향하는 실천도 속에야말로 불교의 본의가 있다고 보고, 단순히 이론을 위한 이론은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석존이 멸한 후 불설(佛說)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부파(部派)로 분열하게 되자, 아비달마라고 불리는 주석연구(註釋硏究)가 발달하여 불교의 학문적 연구가 양성(釀成)되었다. 또한 초기의 대승불교에서는 실천면이 강조되었으나 차차 교리의 학문적..
[백과사전] 행증불교 행증불교 行證佛敎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수행하며, 석존이 체득한 깨달음의 경지를 자기 자신에게 실현하기를 지향하는 불교를 행증불교라 한다. 학문불교가 불교를 객관적 연구대상으로 하여 자기의 밖에 놓는 데 대하여, 불교가 지향하는 깨달음을 주체적으로 자기 인격 위에 실현하고자 하는 실천불교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이 수행도(修行道)에 관해서 불교에서는 원시불교 이래 여러가지 실천도가 역설되었고,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수행규정이 정해져 있다. 즉, 석존은 출가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길로서 계정혜(戒定慧)의 3학(三學)이나 8정도(八正道)를 역설하고,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의 실천도로서의 6바라밀(六婆羅蜜)이 역설되었다. 한편 인도에서는 대승의 유가행(瑜伽行)이나 밀교(密敎)의 수법(修法..
[백과사전] 재가불교 재가불교 在家佛敎 재가는 출가에 대하여 속세의 집에 살며 스스로 생계를 세우고 있는 속인(俗人)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 재속인으로서도 불법승(佛法僧)의 3보(三寶)에 귀의(歸依)할 맹서를 세워(三歸依), 불살생·불투도(不偸盜)·불사음·불망어(不妄語)·불음주(不飮酒)의 5계(五戒)를 받으면 남성은 우바새(優婆塞), 여성은 우바이(優婆夷)로서 불교의 승가(僧伽)를 구하는 칠중(七衆) 속에 들 수 있다. 이러한 재가인(在家人)들이 믿고 실천하여 온 불교가 재가불교이며, 옛날 대승불교운동의 추진력이 된 것은 불탑(佛塔)을 수호한 재가신자였다는 추정도 있고, 대승경전에는 이나 과 같은 재가의 거사(居士)나 부인이 주인공이 된 경전이 출현하고, 불교는 한낱 추가수행자의 독점물이 아니라 재가의 세속생활을 통해서도 불..
[백과사전] 출가불교 출가불교 出家佛敎 재속(在俗) 생활을 떠나 오로지 불교수행에 힘쓰는 것을 출가라고 하는데, 출가는 인도에서 불교 이전부터 행하여졌으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적(靜寂)한 산림한처(山林閑處)에서 수행하는 풍조가 있었다. 석존은 29세때에 출가하여 진실의 도를 찾아 수행으로 들어갔는데, 불교도 석존을 본떠 출가하여 불교를 수행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불교 교단은 이와 같은 출가자에 의해 조직되었다. 그러나 교단의 확대에 따라 아무나 다 출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연령상의 제한이나 출가자로서 지켜야 할 여러 계율이 정하여졌다. 부파불교에서는 출가자를 사미(沙彌)·사미니(沙彌尼)·식차마나(式叉摩那)·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의 5중(五衆)으로 했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출가자를 출가·출가니의 2..
[백과사전] 대승불교 대승불교 大乘佛敎 부파불교 중에서도 가장 유력했던 것은 보수파 상좌부계(上座部系)에서 나온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였다. 유부(有部)는 매우 조직화된 교의체계를 확립하고, 학문불교로서 국왕의 보호 아래 안정된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문으로서의 불교는 아무리 진보 발전하여도 종교로서의 불교의 역할은 점점 망각되어 갔다. 그래서 이같은 불교의 고정화(固定化)·전문화(專門化)에 대해서 널리 민중의 신앙 속에 살아 있는 불교의 부흥을 외치며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운동(大乘佛敎敎動)이다. 대승불교는 석존의 유골을 안치한 사리탑(舍利塔), 즉 스투파를 수호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일어났다고 하며, 번거로운 교리보다는 불덕을 찬양하고, 불타를 향한 깊은 신앙에 살려고 하는 취지 아래 생겨난 것이다. 이리하여..
[백과사전] 소승불교 소승불교 小乘佛敎 석존(釋尊)이 멸한 뒤 100년경, 불교 교단은 계율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의 둘로 분열되고(근본분열), 그후 약 200년 동안에 걸쳐 분열을 거듭하여 18부로 나뉘어(枝末分裂) 근본2부(根本二部)를 포함해서 20부가 되었다 한다. 이것이 부파(部派)불교라는 것인데, 그후 기원 전후에 새로운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되자 지금까지의 부파불교를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폄칭(貶稱)하게 되었다. 이 부파시대의 불교는 각 부파마다 석존의 가르침을 정리·분류하고, 각기 독자적인 '경(經)'과 '율(律)'을 전함과 동시에 이들을 해석·연구하여 조직 체계화하는 학문이 발달하였다. 이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對法)라 하여 논(論)이라 불렀다. 소승불교는 이처..
[백과사전] 사문 사문 沙門 슈라마나(sramana)의 음역으로서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된다.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하는 것으로, 출가자의 총칭으로 되어 있다. 본래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쓰이며 바라문교에서는 바라문 계급 이외의 출가수행자를 사문(沙門)이라 했는데, 불교에서는 출가하여 불도수행에 힘쓰는 사람을 모두 사문(沙門)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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