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불교 대백과사전/불교의 역사

(123)
[백과사전] 정반왕 정반왕 淨飯王 가비라성의 왕. 싯다르타의 아버지인 수도다나(Suddhodana)를 말함. 그는 라자(왕)의 지위에 있었으나 실제로는 조그마한 나라의 공화정치의 대표자였다. 싯다르타를 깊이 사랑하여 그가 출가(出家)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이를 막아보려 여러 가지로 애를 썼으나 뒤에 싯다르타가 정각(正覺)에 도달하여 불교를 펴게 되자 스스로 나아가 독실한 귀의자(歸依者)가 되었다. 76세 혹은 9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백과사전] 석가족 석가족 釋迦族 불교의 창시조 고타마 부다의 존칭인 석가모니(釋迦牟尼:Sakyamuni)가 석가족 출신의 성자(聖者)를 의미하는 것과 같이 불타는 석가족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족은 아리아계통의 코살라 종족의 일파라고 하나 분명치 않다. 석가족은 불타가 이세상에 나올 무렵 이미 북인도의 가비라성(迦毘羅城)을 중심으로 하여 소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의 인도는 오랜 귀족 공화정치로부터 왕족이 지배하게 되는 정치체제로 옮아가는 도중이었는데 불타가 세상에 나올 무렵에는 아직 강력한 전제국가는 출현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석가족의 주위에는 코살라국(國), 마가다국, 쿠시나가라국과 기타 왕국 또는 공화국이 병립하여 있어서 이들 사이에 낀 석가족의 정정(政情)은 불안하였다. 석가족은 무사계급에 속하고 ..
[백과사전] 탄생 탄생 誕生 불타가 탄생한 연대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어서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타는 대략 서력 기원전 486년부터 483년경에 네팔 지방의 소왕국(小王國)의 왕자로 태어났다. 탄생일은 북방불교에서는 4월 8일이고 남방불교에서는 5월 보름날(이날을 베사카 제일로서 축하한다)로 되어 있다. 불전에는 이날 불타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면서 태어났다고 하여 이 불세출의 종교적 거인의 탄생을 축하한다.
[백과사전] 불타의 전기 불타의 전기 佛陀-傳記 불타는 역사적 실재인물이다. 그의 생애를 기록한 불전(佛傳)은 많이 있으나 거의가 불타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쓰여진 것으로 거기에는 당연히 신앙적 욕구에 의한 신비적이고 영험적(靈驗的)인 여러 가지 윤색(潤色)이 가해지게 되었다. 가령 불전경전(佛傳經典)은 서력기원 전후에 많이 제작되었는데 아습박구사(馬鳴) 작이라 하는 (漢譯)는 불타의 생애를 서사시풍으로 노래한 것이고, 한역으로 된 은 60권에 달하는 불전의 집대성이다. 이들은 모두 신앙적 전기물로서 객관적인 기술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불전에는 전기와 전설이 혼재(混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실재로서의 불타의 생애는 이와 같은 다분히 전설적인 자료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여 이와 관련된 다른 자료들을 종합..
[백과사전] 원시불교 원시불교 原始佛敎 불교는 불타(佛陀:Buddha)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면서 그것이 계승·전파되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 시대와 더불어 발전하여 온 것이다. 인도에서 발생하여 아시아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퍼져나간 불교를 모두 똑같은 한가지의 것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각기 다른 특색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불타가 도(道)를 깨닫고 전도를 시작한 때로부터 그의 입적(入寂)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성립된 불교를 일반적으로 원시불교라 한다. 그 기간은 불타의 제자들 사이에 분파가 생겨날 때까지의 약 2,300년간을 말하는데 북방불교와 남방불교의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원시불교의 특색은 불타의 가르침이 직접화법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점에 있으..
[백과사전] 불교의 전파 불교의 전파 佛敎-傳播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된 대신 불교는 스리랑카·미얀마·타이와 중앙 아시아 제국(諸國)을 비롯해 티베트·중국·한국·일본 등 광범한 지역으로 전파되어 각 지역의 민족문화와 융합하여 다채로운 종교문화를 이룩하였다. 특히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1세기경이라고 추정되지만 불교 경전의 한역(漢譯)은 2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행해지고 그 후 위진(魏晋)·남북조(南北朝) 시대에서 수(隋)·당(唐)을 거쳐 송(宋)·원(元)·명(明)까지 중국 불교는 크게 번창하여 독특한 불교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현실주의적 성격을 지닌 중국인에게 불교가 처음 전해질 때 충돌을 면치 못했다. 그 전래 시기는 전한(前漢)경으로 소급되고 경전이 본격적으로 번역되는 것은 후한(後漢)에 들어와서였으나, 현실을 떠나는..
[백과사전] 인도불교의 쇠퇴 인도불교의 쇠퇴 印度佛敎-衰退 금강승(金剛乘)불교가 팔라(Pala) 왕조(750경∼1199)의 보호를 받으며 마가다 지방과 서벵골 지방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나 이때의 불교는 거의 힌두교나 다를 것이 없는 상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불교의 세력은 오히려 중국·한국·일본에서 흥왕을 보았다. 이와 같이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된 것은 불교 자체가 내적으로 변화를 일으켜 미륵불(彌勒佛)·관음(觀音)·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은 불(佛)·보살(菩薩)들이 힌두교의 제신(諸神)들과 거의 같은 성격과 기능을 갖게 된 점에 있었고 그 위에 이슬람교의 박해에 의해 승려가 도태되고 사원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백과사전] 밀교의 성립 밀교의 성립 密敎-成立 7세기 중엽에서 말엽에 이르는 시기에 새로운 불교의 대두를 보게 된다. 곧 밀교(密敎)의 발흥이다. 밀교사상은 불타 당시부터 주법(呪法)으로 전해오던 것으로 주구(呪句)·진언(眞言:Mantra)·다라니(陀羅尼:Dharani)를 송지(誦持)하여 그것으로 마음을 통일하고 구경의 경지에 도달하여 불(佛)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불교의 일파였다. 7세기 중엽에 이르러 이러한 사상이 조직 종합되어 ·과 같은 문헌으로 나타남으로써 밀교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이 밀교도 대승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대승불교의 퇴영적 일면을 드러내는 사상으로 평가된다. 그 발생 이유는 세친 이후 대승불교가 지나친 철학적·이론적 경향으로 흘러 일반 대중과 유리되어 마치 아비달마 불교가 빠진 것과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백과사전] 대승불교의 흥기 대승불교의 흥기 大乘佛敎-興起 대승불교가 흥기한 것은 BC 1세기경이나 이 움직임의 태동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대승불교의 대두로 인하여 이전의 6세기간에 걸친 불교를 통칭하여 소승불교(小乘佛敎)라 불러 대승불교와 함께 오늘날까지 불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2대(二大) 유파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대두로 소승불교는 쇠퇴·소멸의 길을 달린 것이 아니라 서로 정통을 주장하며 계속 부파적 발전을 보았고 그러한 세력은 실론을 위시한 남방 제국(諸國)으로도 퍼져갔다. 스리랑카의 경우 4∼5세기간 부다다타(Buddhadatta)·부다고샤(Buddhaghosa)와 같은 일단(一團)의 학자들에 의해 수많은 주석서들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바탕을 이루어 미얀마·타이·캄보디아·라오스 등지의 소..
[백과사전] 부파불교 시대 부파불교 시대 部派佛敎時代 불교의 급속한 팽창과 유통(流通)은 일면 교단 자체의 질서면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것은 드디어 교파분열을 초래하였다. 불멸 후 100년경 계율(戒律) 해석을 놓고 전통적 보수파와 진보적 자유파가 대립되어 두 개의 부파(部派)를 낳았다. 전자를 상좌부(上座部:Theravada)라 하였고 후자를 대중부(大衆部:Mahasamghika)라 한다. 부파 발생의 원인은 불타의 교설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교단질서 확립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유래되었다. 불멸 후 100년경 베샬리(Vaiali:毘舍離)에서 비구계(比丘戒)로 10사(事)를 두고 합법(合法)을 주장하는 측과 비법(非法)이라고 반대하는 측이 대립되어 분열된 것이다. 비법을 주장하는 측이 700명의 비구를 모아 집회를 열었으니..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