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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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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방글라데시의 불교 방글라데시의 불교 방글라데시의 불교는 이슬람교와 힌두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종교다. 방글라데시에는 2011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약 0.6%인 100만여 명의 불교 신자가 있으며 상좌부 불교가 주류를 이룬다. 불교 신자의 65% 이상은 치타공 구릉지대에 사는 줌머인과 바루아 불교도들이며, 나머지는 불교를 믿는 벵골인들이다. 역사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오늘날의 방글라데시 지역을 찾았으며, 일부 지역민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승려가 됐다. 그러나 불교는 아소카 재위 이전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팔라 제국 시기에 이르러 불교가 방글라데시 곳곳으로 전파됐고 사찰들이 지어졌다. 팔라 제국 시기에 오늘날의 다카 부근인 비크람푸르에서 승려 아티샤가 태어나 대승불교를 전파했..
[백과사전] 태국의 불교 태국의 불교 태국에는 8세기경에 대승불교가 전해졌으나, 11세기 중반에 미얀마의 아나와라타 왕의 침공과 함께 상좌부 계통의 소승불교가 크게 일어나 대승불교를 쫓아냈다. 그 후 13세기 말에는 실론으로부터 상좌부 불교가 수입되어 계율 중심의 소승불교가 태국 불교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전통종교 국왕은 대대로 불교에 귀의하며 특히 차크리 왕조(1782년 창립)의 라마 1세와 라마 4세는 사원을 건립하고 경전을 편찬하며, 승풍(僧風)의 쇄신을 도모하고, 불교의 보호와 흥륭(興隆)에 힘썼다. 국민도 불교에 귀의하여 남자는 성인이 되기 전에 한 차례 승적에 들어가 사원에서 수도 생활을 체험할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강력한 사회적 전통이 있으며, 또한 사람들은 이러한 수도승을 존경하고 자신의 재물로써 공양하는 ..
[백과사전] 티베트의 불교 티베트의 불교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와 네팔 그리고 몽골 등지를 포함한 히말라야 산맥과 인접한 지역에서 믿는 대승불교의 종파이다. 종교적 스승인 라마를 중시한다고 하여 라마교라고도 불린다. 가장 잘 알려진 종교 지도자는 겔룩파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이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티베트 고유의 민속종교는 뵌교(Bön)였다. 그러나 불교에 기반한 통치를 위해 티베트의 국왕이 직접 인도에서부터 후기 대승불교를 도입했기 때문에 티베트 불교는 인도 불교의 직계로 여겨진다. 도입 과정에서 의례나 신앙 존격 등에 티벳 토착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티베트의 불교의 도입 과정에서 산스크리트어의 경전을 올바르게 번역할 수 있도록 티베트 문자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이 때문에 티베트어 경전은 멸실된 산스크리트어 경전 연구에 있어..
[백과사전] 대승불교 대승불교 大乘佛敎 인도의 대승불교나 초기 대승경전의 하나하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하는 것은 종래 여러 학자들에 의해 상세한 연구가 행하여졌으나 아직 정설은 없다. 그러나 불타의 입멸 후 400∼500년이 경과한 뒤에는 어느 경전이든 불타가 직접 말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저자는 불타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신자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파불교 중에서 진보적이었던 대중부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불타에게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있어 대승불교운동의 추진 역할을 한 것이라는 설도있으나, 한편 이와 같은 출가(出家) 비구 이외에 재가신자의 집단인 보살단(菩薩團)이 아쇼카왕의 치세(BC 268∼BC 232) 무렵부터 인도 각지의 불타의 유골 위에 세워진 ..
[백과사전] 대승불교 대승불교 大乘佛敎 부파불교 중에서도 가장 유력했던 것은 보수파 상좌부계(上座部系)에서 나온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였다. 유부(有部)는 매우 조직화된 교의체계를 확립하고, 학문불교로서 국왕의 보호 아래 안정된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문으로서의 불교는 아무리 진보 발전하여도 종교로서의 불교의 역할은 점점 망각되어 갔다. 그래서 이같은 불교의 고정화(固定化)·전문화(專門化)에 대해서 널리 민중의 신앙 속에 살아 있는 불교의 부흥을 외치며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운동(大乘佛敎敎動)이다. 대승불교는 석존의 유골을 안치한 사리탑(舍利塔), 즉 스투파를 수호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일어났다고 하며, 번거로운 교리보다는 불덕을 찬양하고, 불타를 향한 깊은 신앙에 살려고 하는 취지 아래 생겨난 것이다. 이리하여..
[백과사전] 구마라습 구마라습 鳩摩羅什(350∼409경) 당대(唐代)의 현장(玄奬)과 더불어 일컬어지는 대번역가. 쿠마라지바(Kumarajiva)의 음을 따서 구마라습이라 하고 이를 약하여 라습(羅什) 또는 습(什)이라고도 한다. 서역의 구자국(龜玆國)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에 어머니를 따라 계빈·사륵(沙勒)에 유학하여 소승불교와 인도 학문을 배웠다. 사륵에서는 수리야소마(須利耶蘇摩)로부터 대승불교를 배우고 다시 용수계(龍樹系)의 공관불교(空觀佛敎)를 연구한 다음 귀국하였다. 20세 때에 십송률(十誦律)을 배워 비구가 되었다. 뒤에 후진(後秦) 요흥(姚興)의 부름을 받고 장안에 들어가 국사(國師)로서의 대우를 받고 소요원(逍遙園)과 대찰에서 경론의 번역에 종사하여 역경사에 있어서 하나의 시기를 이룩하였다. 그의 밑에 모인 학승..
[백과사전] 남해불교 남해불교 南海佛敎 옛날에 자바·수마트라·말레이시아 등지에 번영하던 불교를 통틀어 남해불교라고 한다. 처음에는 소승불교가 행하여졌으나 뒤이어 대승불교가 세력을 얻게 되고 나중에는 밀교(密敎)로 옮겨져서 8세기를 정점으로 극히 융성하였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 인도네시아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이슬람교가 지배하고 불교도는 약 150만에 불과하다. 다만 뛰어난 불교 조각 등을 남긴 자바의 보르브도르 대탑(大塔) 등이 옛날 불교 전성시대의 면모를 오늘에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백과사전] 대승불교의 대두 대승불교의 대두 大乘佛敎-擡頭 대승(Mahayana)이라 함은 열반(涅槃)의 피안(彼岸)에 중생을 운반하는 커다란 탈것을 의미한다. 당시 상좌부 계통의 불교는 경전의 훈고·주석에 치우쳐 형식화되었고 승원(僧院)에 있어서의 출가 중심의 고답적인 독선주의에 빠져 있었다. 이를 반성한 혁신적인 비구들과 당시에 성불(成佛)을 이상으로 보살행(菩薩行)에 정진하고 있던 재가(在家) 신자들 사이에 형식보다도 내용을 중시하고 출가와 재가의 구별을 초월하여 널리 사회를 구제하려는 실천적 신앙운동이 대두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타행(利他行)의 실천을 강조하고 출세간적(出世間的)인 자기본위의 전통적 불교를 소승(Hinayana)이라 낮춰 부르고 자기들의 입장을 대승불교라고 불렀다. 대승불교는 불타시대의 근본정신 회복을 지향하..
[백과사전] 부파불교 시대 부파불교 시대 部派佛敎時代 불교의 급속한 팽창과 유통(流通)은 일면 교단 자체의 질서면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것은 드디어 교파분열을 초래하였다. 불멸 후 100년경 계율(戒律) 해석을 놓고 전통적 보수파와 진보적 자유파가 대립되어 두 개의 부파(部派)를 낳았다. 전자를 상좌부(上座部:Theravada)라 하였고 후자를 대중부(大衆部:Mahasamghika)라 한다. 부파 발생의 원인은 불타의 교설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교단질서 확립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유래되었다. 불멸 후 100년경 베샬리(Vaiali:毘舍離)에서 비구계(比丘戒)로 10사(事)를 두고 합법(合法)을 주장하는 측과 비법(非法)이라고 반대하는 측이 대립되어 분열된 것이다. 비법을 주장하는 측이 700명의 비구를 모아 집회를 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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