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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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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선서 선서(善逝, Sugata) 뛰어나게 참됨에 다다른 분.
[백과사전] 명행족 명행족(明行足, Vidyācarana Sampanna) 하는 일에 허물이 없는 분.
[백과사전] 정각자 정각자(正覺者, Sambuddha) 올바로 깨달음을 얻은 분. 길게는 무상정등각자 (無上正等覺者 Anuttara Samyaksambuddha) 혹은 정등각자(Samyaksambuddha)로 일컬어짐.
[백과사전] 아라한 아라한(阿羅漢, Arhat) 세상 사람들의 공양과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분.
[백과사전] 여래 여래(如來, Tathāgata) 문자 그대로는 "그렇게 가신 분"의 의미. 붓다 자신은 자신을 여래라고 불렀고 또 남들에게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백과사전] 우바리 우바리(優波離) 우팔리(산스크리트어: उपालि, 팔리어: Upali) 또는 우바리(優波離)는 석가의 십대제자의 한 명. 지률제일로 칭해졌다. 그는 인도의 카스트에서도 하층인 수드라의 출신으로, 카피라성에서 석가족의 제의 왕자의 이발사였다. 석가가 실다 (싯다르타) 라는 태자의 무렵에 집사였다고도 말한다. 석가가 카피라성에 귀국해, 손타라난타, 나후라가 제자가 된 후, 아나률, 발제이가 (바드리카, 혹은 밧디야. 동명의 사람이 오비구의 한 명에도 있지만 다른사람), 금비라, 파구, 아난, 데바닷타의 6명 (혹은 난제가를 더한 7명 모두)의 제왕자가 불제자가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도 왕자들에 따라 아누피야마을에 있던 석가불의 아래에서, 제왕자를 그대로 두어 먼저 불제자가 되었다. 아나률이 출가..
[백과사전] 아난타 아난타(阿難陀) 아난다(Ananda)는 인도 카필라의 승려이다. 고타마 붓다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아난타(阿難陀) 또는 아난(阿難)이라고도 불린다. 아난다는 고타마 붓다의 사촌 동생이다. 의역하여 경희(慶喜)라고도 불린다. 고타마 붓다는 특정한 시자를 두지 않았는데, 대중들의 천거에 따라 아난다가 시자를 맡게 되었으며, 그 후 20년간 고타마 붓다를 모셨다. 고타마 붓다의 반열반을 지켜보았으며, 고타마 붓다의 입멸 후 마하가섭의 지휘하에 열린, 불교 경전의 편찬을 위한 제1차 결집 회의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백과사전] 아나률 아나률(阿那律) 아니룻다(산스크리트어: अनिरुद्ध, 팔리어: Anuruddha) 또는 아나률(阿那律) 은 십대제자의 한 명. 천안제일. 석가의 사촌동생. 석가모니 부처가 고향 카필라 성으로 돌아오고, 난타(난다), 라훌(라후라)를 시작으로 석가족의 청년 5백 명이 출가하게 되었다. 아나률은 형인 마하남과 상담해 형 대신 그가 출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혹은 형제의 어머니가 두 형제 모두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바드리카 왕(跋提梨迦王)이 출가한다면 출가해도 괜찮다」라고 했고 이에 친구였던 바드리카 왕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이레 동안의 유예 뒤에 모두 출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덧붙여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는 하층인 수드라 출신으로 이발사였던 우파리가 왕자인 아나률보다 먼저 출가했는데, "먼저 제자..
[백과사전] 수보리 수보리(須菩提) 수부티(산스크리트어: सुभूति) 또는 수보리(須菩提)는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 한 명이다. 공(空)에 대해 깊이 이해하였다 하여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다. 수보리의 생애는 불경에 전해지는 단편적인 이야기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사위국의 상인 집안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숙부였던 수달다(須達多)가 기원정사(祇園精舎)를 세우고 석가모니를 모시고 설법을 하였을 때, 그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다고 한다. 경전 수보리는 공(空)에 대한 이해가 깊어 해공제일로 불리며, 이와 관계가 깊은 반야경계 경전에 부처의 대화상대로 흔히 등장한다. 유명한 경전으로는 금강경, 반야심경 등이 있다. 문학 서유기에서 손오공의 스승으로 등장한다.
[백과사전] 사리불의 생애 사리불(舍利佛)의 생애 마가다국의 왕사성(라쟈가하) 북쪽, 나라타(나라다, 현나란다) 촌 출신으로 유복한 바라문의 집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우파제사(우파티사)라고 했다. 이웃마을의 목건련과 친구의 사이. 목련과 함께, 당초는 산쟈야 베이랏티풋타에게 사사했다. 석가의 제자의 앗사지(아설시) 비구와 만나, 앗사지를 통해서 석가의 가르침의 일부를 듣자 마자 예류과(깨달음의 최초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목건련을 따라 석가에 입문 하면, 산쟈야 선인의 다른 신도 250명이나, 그들 두 명에 따라, 산쟈야 교단을 떠나 석가에 입문했다. 그 후 곧바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리불은 석가의 신임도 두껍고, 가끔 석가에 대신해 법을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석가의 친자식인 나후라의 후견인으로도 되었다. 또 데바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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