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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대백과사전/불교의 역사

[백과사전] 밀교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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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성립

密敎-成立
7세기 중엽에서 말엽에 이르는 시기에 새로운 불교의 대두를 보게 된다. 곧 밀교(密敎)의 발흥이다. 밀교사상은 불타 당시부터 주법(呪法)으로 전해오던 것으로 주구(呪句)·진언(眞言:Mantra)·다라니(陀羅尼:Dharani)를 송지(誦持)하여 그것으로 마음을 통일하고 구경의 경지에 도달하여 불(佛)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불교의 일파였다. 7세기 중엽에 이르러 이러한 사상이 조직 종합되어 <대일경(大日經)>·<금강정경(金剛頂經)>과 같은 문헌으로 나타남으로써 밀교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이 밀교도 대승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대승불교의 퇴영적 일면을 드러내는 사상으로 평가된다. 그 발생 이유는 세친 이후 대승불교가 지나친 철학적·이론적 경향으로 흘러 일반 대중과 유리되어 마치 아비달마 불교가 빠진 것과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인도에서 탄트라 문학이 유행되었고 그 풍조에 따라 불교의 밀교적 전개가 촉진된 것이다. 중관 사상도 밀교화되었으며 따라서 밀교는 힌두 사회에서 환영받아 급속히 보급되었다. 8세기 후반에 와서는 밀교가 대중화됨과 동시에 저급한 의례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밀교의 대중화는 또 하나의 불교 유파를 형성시켰으니 그것을 금강승(金剛乘:Vajrayana)이라 하였는데, 이러한 운동을 일으킨 사람은 인타라부저 (因陀羅部底:Indrabhuti, 687∼717?) 였다. 그의 아들인 연화생(蓮華生:Padmasam)은 밀교를 티베트로 전했고, 이때 인도로부터 다수의 고승이 티베트에 들어가 밀교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를 전파했다. 그러나 티베트에는 중국에서 온 학승들이 있어, 이들과 인도 학승 사이에 견해 차이가 생겨 혼란을 일으켰다.
티손데첸(KhrisronIdebstan)왕은 수도 라사(Lhasa)에서 회의를 열어 논쟁을 매듭지었고, 그 결과 인도측의 점문파(漸門派:RcenMinpe)의 설이 인정되고 중국의 돈문파(頓門派:Stonmunpa)의 설은 배척되었다. 이로써 티베트 불교는 인도 후기불교의 성격을 그 주류로 삼게 되었다. 티베트로 들어간 밀교는 머지 않아 라마교로 발전하여 티베트 고유 불교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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