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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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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삼화사의 역사 삼화사(三和寺) 삼화사는 642년(신라 선덕여왕 11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처음에는 흑련대라고 했으나 864년 범일국사가 중건하면서 삼공암이라 부르며 사찰의 성격도 교종에서 선종으로 바뀌었다. 삼공암은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다. 왕건은 이곳에서 후삼국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 후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자 그 동안 고려와 후백제, 신라가 가졌던 증오와 갈등을 끝내고 화합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로 절 이름을 삼화사로 바꾸었다. 이성계는 고려 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할 때 공양왕과 그 마지막 추종세력을 모두 삼척 앞 바다에 수장했다고 한다. 그 원귀들을 천도하기 위해 조선 개국 이후 삼화사는 수륙재 도량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후 1747년에 홍수와 사태로 인하여 무너지자 옛터에서 조금 위..
[백과사전] 백담사의 역사 백담사(百潭寺)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장경(藏經)을 전하고 율종(律宗)을 창건한 한계리 한계사의 고찰이다. 수차에 걸쳐 큰 화재를 입어 자리를 옮겨 다시 짓기를 반복하면서,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었다. 조선 1775년 현 위치에 법당 등의 건물을 중건하였고, 1783년에 백담사로 개칭하였다. 상대적으로 번잡했던 외설악에 비해 한적하고 원시림에 가까운 비경을 간직한 내설악의 입구에 위치해서 봉정암, 오세암 등 외딴 암자를 산내암자로 거느리고 있는, 내설악산을 대표하는 도량이다. 이에 시인 겸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이 이 곳에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와 시집 《님의 침묵》 등을 집필했으며, 춘성은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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