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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요 사찰 정보/삼화사

[백과사전] 삼화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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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三和寺)

삼화사는 642년(신라 선덕여왕 11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처음에는 흑련대라고 했으나 864년 범일국사가 중건하면서 삼공암이라 부르며 사찰의 성격도 교종에서 선종으로 바뀌었다. 삼공암은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다. 왕건은 이곳에서 후삼국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 후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자 그 동안 고려와 후백제, 신라가 가졌던 증오와 갈등을 끝내고 화합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로 절 이름을 삼화사로 바꾸었다.

이성계는 고려 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할 때 공양왕과 그 마지막 추종세력을 모두 삼척 앞 바다에 수장했다고 한다. 그 원귀들을 천도하기 위해 조선 개국 이후 삼화사는 수륙재 도량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후 1747년에 홍수와 사태로 인하여 무너지자 옛터에서 조금 위로 옮겨 지었지만 1820년에 다시 화재가 나자 1824년 재차 중건했다고 한다. 1907년에는 의병(義兵)이 숙박하였다는 이유로 일본군들이 방화해서 대웅전과 선방 등 200여 칸이 소실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삼화사 주위에는 많은 유적과 설화가 전한다. 고려 말에 민족의식을 고취했던 <제왕운기>의 저자 이승휴는 삼화사 주변에 용안당을 짓고 이곳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했으며, 10여 년 동안 불경을 탐독하다가 자신이 살던 용안당을 삼화사에 희사해서 간장암이라는 암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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