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2)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과사전] 황룡상의 역사 황룡사(皇龍寺) 황룡사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어느 사찰보다도 월등히 많이 볼 수 있다. 우선 기록에 나타난바 각종 건축의 연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에 따르면 진흥왕 창건 이래 선덕여왕대의 9층탑의 완성까지는 90년의 장시일이 경과되고 있다. 진흥왕 14년(553) 창건 진흥왕 27년(566) 일차 공사완성 진흥왕 30년(569) 주위장우(周圍墻宇) 완성 진흥왕 35년(574)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 높이가 일장 육척이 되는 삼존불상) 조성 진평왕 6년(584) 금당 조성 선덕여왕 14년(645) 9층탑 조성 경덕왕 13년(754) 종 조성(造成) 황룡사는 국가적 대찰로서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와 더불어 황룡사의 9층 목탑과 장륙삼존불상(丈六三尊佛像)은 신라의 3보로 숭앙을 받아왔다... [백과사전] 분황사의 역사 분황사(芬皇寺) 《삼국사기》(三國史記) 선덕여왕 3년(634년)조에는 이 해,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고, 분황사가 완공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분황(芬皇)이라는 사찰의 이름은 '향기로운 임금' 즉 선덕여왕 본인을 가리키며, 굳이 직역할 경우 '여왕(여제)의 사찰'(즉 '여제를 위한 사찰') 정도로 그 이름을 풀이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도 비슷한 기록을 남기고 있어, 종래의 연구에서는 분황사를 발원한 단월(檀越)은 선덕여왕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선덕여왕 3년인 인평 원년(634년)에 완공(成)되었다고 하였고, 《삼국유사》는 이 해(갑오년)에 처음 지었다(始開)고 하여, 두 기록이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해당 시점인 634년을 전자가 사찰의 완공 시점으로 기록하였다면 후자는 사..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