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1042)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과사전] 초전법륜 초전법륜 初轉法輪 성도 후의 불타는 한동안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고 있었으나 얼마 후에 이러한 법락(法樂)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고자 우선 지난날에 같이 고행을 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修行者)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바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을 방문하였다. 그들 다섯 사람은 고행을 그만둔 불타를 경멸하였으나 드디어 불타의 설법에 감화되었다. 이때에 불타는 쾌락과 금욕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의 입장에서 설교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불타가 성도를 한 후 최초로 행한 설법(說法)을 초전법륜이라고 한다. 법륜을 전(轉)한다 함은 법을 설파하고 그 실현에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 초전법륜에 의하여 불타의 제자인 5인의 비구(比丘)가 나타나게 되어 불(佛)·법(法)·승(僧)의 불교 교단 성립조건이 갖.. [백과사전] 보리수 보리수 菩提樹 필발라나무 또는 아슈바타라고도 한다. 불타가 이 나무 아래에 좌선(坐禪)을 하여 정각(正覺:菩提=보리수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불타가 깨우침을 얻은 보리수는 네란쟈나강의 물가에 있었다고 하며, 불타 정각(正覺)의 고사에 관련되어 이 땅을 부다가야라고도 하였다. '보대수'라고도 발음한다. [백과사전] 성도 성도 成道 불전에 따르면 불타는 35세의 해 12월 8일 이른 새벽(남방불교의 전설에는 바이샤카月의 만월이 된 밤)에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노·병·사의 본원을 단멸(斷滅)하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번뇌(煩惱)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정적(絶對靜寂), 즉 열반(涅槃)의 세계를 체현(體現)한 것이며 올바른 자각, 즉 정각(正覺)을 얻어 눈을 뜨게 된 자, 즉 불타(佛陀)가 되었다는 자기혁신의 일대 전환이었다. 불교는 이 자각을 얻은 자, 즉 불타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백과사전] 고행 고행 苦行 시종과 헤어진 불타는 정발(淨髮)을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구걸을 하면서 남쪽의 마가다국(Magadha國)을 향하여 갔다. 불타가 찾아간 이 나라 수도 라자 그리하(Rajagrha:王舍城)는 당시 정치·경제의 중심지였고 많은 수도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불타는 바라문교의 행자(行者)로부터 요가를 배웠으나 정신적인 만족이 없었으므로 다시 계속하여 마지막으로는 네란쟈나강(Nairanjananati江:尼連禪河) 부근에서 단식과 불면의 고행을 계속하였다. 이 기간이 6년 동안이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육체적인 고행도 효험이 없음을 알고 이를 그만두었다. 이때에, 지금까지 고행을 같이하던 다섯 사람의 수도자가 떠나갔으나 그는 목욕을 하고 심신을 맑게 하여 마을 처녀가 갖다 준 젖과 죽을 마시.. [백과사전] 출가 출가 出家 불타의 출가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중첩되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타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여 그로 하여금 끝내 가족의 애정과 유대관계를 단절하고 왕국을 떠나가게 한 것은 무상한 이 세상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도(道)를 추구하려는 끊임없는 정열이었다. 불전에 있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이야기는 노(老)·병(病)·사(死)·사문(四門)의 무상고(無常苦)에 대한 그의 강렬한 자각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불타는 인생문제에 관한 한 조금도 허술하게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인도에는 도를 닦으려 하는 자는 출가하는 풍습도 있어서 아들 라후라를 얻어 후계자에 대해 근심하지 않아도 된 불타는 29세가 된 어느날 밤에 시종 차닉(車匿)을 데.. [백과사전] 출가 이전의 불타 출가 이전의 불타 出家以前-佛陀 불타는 가비라성의 왕자로 태어났다. 경전에 의하면 그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사파뎨의 손에 자랐다고 한다. 그는 성을 고타마(Gautama), 이름을 싯다르타(Siddhartha)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원성취'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부왕(父王)의 한없는 애정이 담긴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왕자였던 그의 소년시절은 물심양면에 걸쳐 행복하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무예에 관한 교육을 받았으나 명상을 즐기는 폭넓은 성격의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커서 외사촌인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후라를 얻었는데 그는 이때부터 끊임없이 출가하기를 희구하게 되었다. 그 동기는 일찍부터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고 하나 주요한 원인은 궁정생활의 형식적.. [백과사전] 룸비니원 룸비니원 Lumbini園 중인도 카필라바스트(Kapilavastu:迦毘羅城)에 있었던 임원(林園). 불타가 탄생한 성지로 되어 있으며 오랫동안 그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1897년 네팔국의 남쪽 룸민디에서 아쇼카왕이 룸비니를 방문한 기념석주(記念石柱)가 발견되어 그 위치가 판명되었다. [백과사전] 마야부인 마야부인 摩耶夫人 싯다르타의 생모(生母)인 마하마야(Mahamaya)를 말한다. 구리성(拘利城)의 집정관 선각장자(善覺長者)의 딸로 태어나 이웃 나라 정반왕의 왕비가 되었다.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45세에 싯다르타를 잉태하여 당시 인도의 습관에 따라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 위하여 구리성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의 숲속에서 싯다르타를 낳았다고 한다. 싯다르타의 출산 후 7일 만에 죽었다. [백과사전] 정반왕 정반왕 淨飯王 가비라성의 왕. 싯다르타의 아버지인 수도다나(Suddhodana)를 말함. 그는 라자(왕)의 지위에 있었으나 실제로는 조그마한 나라의 공화정치의 대표자였다. 싯다르타를 깊이 사랑하여 그가 출가(出家)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이를 막아보려 여러 가지로 애를 썼으나 뒤에 싯다르타가 정각(正覺)에 도달하여 불교를 펴게 되자 스스로 나아가 독실한 귀의자(歸依者)가 되었다. 76세 혹은 9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백과사전] 석가족 석가족 釋迦族 불교의 창시조 고타마 부다의 존칭인 석가모니(釋迦牟尼:Sakyamuni)가 석가족 출신의 성자(聖者)를 의미하는 것과 같이 불타는 석가족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족은 아리아계통의 코살라 종족의 일파라고 하나 분명치 않다. 석가족은 불타가 이세상에 나올 무렵 이미 북인도의 가비라성(迦毘羅城)을 중심으로 하여 소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의 인도는 오랜 귀족 공화정치로부터 왕족이 지배하게 되는 정치체제로 옮아가는 도중이었는데 불타가 세상에 나올 무렵에는 아직 강력한 전제국가는 출현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석가족의 주위에는 코살라국(國), 마가다국, 쿠시나가라국과 기타 왕국 또는 공화국이 병립하여 있어서 이들 사이에 낀 석가족의 정정(政情)은 불안하였다. 석가족은 무사계급에 속하고 .. 이전 1 ··· 90 91 92 93 94 95 96 ··· 10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