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정사 (2)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과사전] 기림사의 역사 기림사(祗林寺) 신라 때 인도 승려인 광유(光有)가 창건하고 이름은 임정사(林井寺)라고 했다. 643년에 원효가 중창한 뒤 기림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기림사는 석가모니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기'자를 따와 붙인 이름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서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로 받았다는 전설이 실려 있는데, 이때 신문왕이 귀환하는 도중에 기림사 서쪽에서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창건 연대는 적어도 신문왕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지은 감은사의 터나 문무왕릉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임진왜란 때는 전략적 요충지라 승병 운동의 중심지였다. 조선 철종 14년인 1863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한 건물이 남아 있다. 보물 41.. [백과사전] 귀족불교 귀족불교 貴族佛敎 불교는 당시 인도에서 행하여지고 있었던 계급제도에 반대 입장을 취한 평등주의에 입각한 것이며, 일부 특권계급의 독점물이 되는 것은 석존의 본의(本意)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교가 교단(敎團)으로서 사회에 존재하는 이상, 교단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재정면의 지원을 필요로 하였다. 이미 석존 재세 당시에 있어서도 기원정사(祇園精舍)나 죽림정사(竹林精舍)라는 승원(僧院)이 유력한 사람들에 의해 기증(寄贈)된 사실이 있고, 그와 같은 유력자나 권력자와의 관련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불교의 전래(傳來) 이래 끊임없이 그때그때의 조정(朝廷)이나 귀족들과 밀접한 관계가 유지되었고, 이같은 외호자(外護者)의 힘에 의해서 많은 사원이 건립되고 승려들이 양성..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