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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주요 인물/달라이 라마

[백과사전] 제13대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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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달라이 라마

툽땐갸초(티베트어: ཐུབ་བསྟན་རྒྱ་མཚོ་, 1876년 5월 5일 ~ 1933년 12월 17일)는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제13대 달라이 라마이다. 정식 법명은 아왕로쌍툽땐직쩨촉레남게이다. 라싸 동남쪽 닥뽀(達布) 지방 한 농가에서 태어났고, 1878년 6월 13일 포탈라궁 사자좌에 앉았다.

당시 티베트는 청나라, 영국, 러시아의 대립 가운데 휘말렸다. 핀란드 대통령인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은 몽골을 여행하는 도중 달라이 라마를 만났는데, 이때 달라이 라마는 영국에 대해 회의적이나 러시아와의 관계 수립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1904년에 영국은 군대를 파견하여 라싸에 주둔시켰고, 라싸 조약에 조인하지만 청나라가 티베트의 주권을 주장하며 대립했다. 달라이 라마는 베이징으로 피신하여 청나라의 비호 하에 들어갔고, 1908년에 라싸로 귀환했다.

1910년에 청군이 영국의 영향을 배제한다는 이유로 티베트를 침공했고, 달라이 라마는 시킴, 네팔을 전전하다 인도로 향했다. 청나라는 달라이 라마의 폐위를 선언하지만 1911년 신해 혁명으로 청나라는 멸망했다. 그러나 그 후도 청군 세력이 남아 티베트 민족 정권이 청군을 축출하려면 1912년까지 걸렸다. 청으로 바뀐 중화민국은 달라이 라마의 지위를 보증했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는 1913년 1월에 라싸로 귀환했다. 1914년에 영국과 심라 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인도 망명 중에서 근대화에 착수했다. 구미의 의원내각제를 본따 까샥(민회)을 기반으로 대신을 선출하는 체제를 확립하고 우표나 지폐의 발행 및 서양식 병원의 설치 등을 실시했다. 또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티베트 기를 정식으로 정하였다.

또한 달라이 라마 13세는 법왕으로서의 위엄과 기품을 갖춘 인물이었다. 예민한 성격에서 이해력과 판단력을 갖추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 13세는 말과 개를 좋아했다. 다만 궁전인 포탈라 궁은 동물의 사육이 금지되어 있어서 이궁의 노블링카에서 사육하고 자신도 대부분을 거기에서 지내고 있었다.식이 있을 때만 포탈라 궁 최상 위층의 거실의 역할에 돌아온. 티베트 개나 인도에서 수입한 일본 개의 일종 등도 기르고 있었다. 꽃도 좋고 유학생의 타다 토오칸에 명하고 일본의 제비꽃 등을 심고 있다.

기상은 아침 5~6시경이고, 조반 전에 불간에 혼자 틀어박힌다고 근행을 했다. 아침 식사는 짠빠와 차, 건육과 얇은 죽였다(당시 티베트의 승려는 조식이 있었지만 육식하다, 그것은 계율 위반이 아닌). 아침 식사 후, 오전 중에는 전국에서 의뢰로 사망자의 기원, 점을 갖고 대가로 금품 등을 받았다. 점은 주사위 3개의 눈을 참고하여 의뢰인이 필요(기도와 공양 등)의 지시를 서면으로 줬다. 국무 회의는 매주 목요일에 별궁에서 열렸다. 국무 회의는 신하가 방안을 세우고 13세에게 상주하는 형태였지만 채택 여부 어쨌든 속결이었다. 용무가 끝나면 비교적 검소한 점심을 먹고 말이나 개와 놀곤 했다. 저녁 식사는 쌀과 중국식 튀김이었다. 영국에서 통조림 등이 주어져도 먹지 않았다. 자기 전에 1시간 정도 명상하고 11시쯤 취침한다.

뛰어난 불화도 그릴 수 있는 도구류에는 자주 자신으로 조각했다. 당시 티베트 대장경의 원판이 상해 있었기 때문에 히말라야에서 벚꽃 나무를 접속하며, 사비로 복구시켰다. 그 때 스스로 교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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