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생애
역사적 배경
기원전 6세기경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카필라바스투(가비라성, 지금의 네팔 티라우라코트)을 중심으로 샤캬 공화국이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 정반왕)와 마야 부인(Mahamaya) 사이에서 태어났다. 샤캬 공화국은 일종의 혼합정체가 행해지고 있었다. 라자라는 수장을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 공동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코살라 왕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탄생
싯다르타의 탄생을 표현한 부조.
슈도다나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왕비가 6개 이빨을 가진 흰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임신했다. 마야 부인은 출산이 임박하자, 당시 풍습에 따라 친정인 데바다하(Devadaha, 구리성)로 향했는데, 음력 4월 8일[주해 2] 룸비니에서 꽃이 만발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서 석가모니를 낳았다.[2] 이때 하늘에서 오색 구름과 무지개가 피었으며, 가릉빈가(迦陵頻伽)가 아름다운 소리로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고, 구룡이 나타나 몸을 닦아 주었다. 석가모니는 태어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고,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 이는 “우주안에서 오직 나만이 높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이니, 이제 내가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뜻이다.
유년 시절과 결혼
싯다르타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을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의 손에 자랐으며, 뛰어난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성장하면서 진리에 관해서도 명상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궁전 안의 안락함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다. 어느 날 궁 밖으로 나와 밭갈이하는 농부를 보고 인간들이 수고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의 고통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쇠약한 노인을 보고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태어나서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운명에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석가의 이러한 우울한 심정을 눈치챈 부왕은 혹시 아들이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출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16세의 나이에 콜리야 왕국의 공주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시켰다.[2] 이후 아들을 낳았는데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이름을 “라훌라(Rahula)”라고 지었다.[3] 부왕은 많은 미녀들을 시켜 주야로 향연도 베풀었으나, 오히려 출가를 재촉하는 동기만 되었다.
출가
29세가 되던 해 어느 날 밤,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서 가족에게 무언의 이별을 고한 채 출가하였다. 이 출가에는 여러 동기가 중첩되어 작용했지만, 가장 강력했던 요인은 “무상한 이 세상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다르마를 추구하려는 끊임없는 열정이었다. 싯다르타 왕자가 카필라바스투 성 동문 밖에서 노인, 남문 밖에서 병자, 서문 밖에서 죽은 자, 북문 밖에서 승려를 만났다는 불전의 사문유관(四門遊觀) 이야기는 무상고(無常苦)에 대한 강렬한 자각을 의미한다. 아들 라훌라가 있으니 후계자에 대한 근심은 하지 않게 된 싯다르타는 시종 차닉(車匿)을 데리고 백마를 타고서 성문을 빠져나갔다.
고행
싯다르타는 시종과 헤어지고 나서 브라만 고행자의 가르침을 받아 단식하고 고행하였다. 그는 정신을 통일하려고 허리를 땅에 대지 않고 결가부좌 유지하는 등 온갖 고행을 하였으나 해탈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고서 혼자 성지를 찾아 수행하기로 하였다. 그는 삭발하고, 옷 갈아입고 구걸하면서 남쪽의 마가다 왕국을 향해 갔다. 마가다 왕국의 수도 라자그리하(Rajagrha, 王舍城)는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고, 많은 수도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브라만교의 행자(行者)에게서 요가를 배웠으나, 역시 정신적으로 만족하지 못하였다. 이번에는 네란자나 강(Nairanjana, 尼連禪河) 부근에서 단식과 불면의 고행을 하였다. 싯다르타가 생존한 당시에는 선정 수행, 고행 수행으로 크게 두가지 수행법이 존재하였는데 싯다르타는 다양한 고행을 철저히 이행하였다.
한때 부왕으로부터 사람이 와서 귀국을 권하였으나, 석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부왕은 석가의 환국을 단념하고 5명의 현자를 뽑아 태자를 수행하게 하였다. 이 기간이 6년이었는데, 이러한 육체적인 고행도 효험이 없음을 알고 그만두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고행을 같이하던 5명의 수도자도 떠나갔다.
고행으로 인한 상념들에서 벗어난 수행
석가는 목욕을 하고 심신을 맑게 하여 마을 처녀가 갖다 준 젖과 죽을 마시고 체력을 회복하였다. 그것을 본 5명의 수도자는 석가가 타락했다고 여겨 떠났다는 설도 있다. 이후 부다가야 근처에 있는 우루베라 촌의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법좌를 정하여 빨랑까좌(교족좌)를 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조용히 내관(內觀)의 고행을 계속하였다. 이 고행은 일체의 공리적 관념을 버리고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을 끊어 없애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함이었다. 이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도를 닦는 마음을 좌절시키려고 달려드는 마라 파피야스와의 싸움으로 묘사되었다.
깨달음
35세 되는 해의 12월 8일 이른 새벽(남방불교의 전설에는 바이샤카월의 만월이 된 밤)에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의 본원을 끊어 없애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 정적(靜寂), 즉 열반의 세계를 체현(體現)한 것이며, 올바른 자각을 얻어 눈을 뜬 부처가 된 것을 의미했다.
포교
싯다르타가 처음으로 설법한 다섯 비구가 법륜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는 보리수 밑에 대좌하여 7일 동안 12연법을 달관하여 모든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한동안 깨달음의 경지를 혼자 즐기다가 얼마 후 이러한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고자 하였다. 우선 지난 날에 같이 고행하던 5명의 수행자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바라나시 교외의 사르나트(鹿野苑)를 방문하였다. 그들 5명은 고행을 그만둔 석가를 경멸했으나 이내 쾌락과 고행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의 설법에 감화되었다. 이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붓다의 제자가 된 5인의 비구(比丘)가 생기면서 불(佛)·법(法)·승(僧)의 불교 교단이 성립하였다.
이후 45년간 라자그리하와 슈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를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범위에 걸쳐 설법을 해나갔다. 붓다의 가르침은 심원하면서도 상대에 따라서 문답 형식이나 비유 또는 인연 설화(因緣說話)를 활용하고, 평이한 말로 친절을 다하여 설법했으므로 점차 제자가 늘어났다. 경제적으로 돕는 귀의자도 나타나서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가 가란타의 동산에 건물을 짓고 헌납하니 승가람의 시초가 되었다. 이를 죽림정사라고 부른다. 사위성에도 기원정사라는 큰 절을 세워 사부중의 완성을 보았다.
입멸
80세의 고령이 될 때까지 설법을 그치지 않았는데, 파바시에서 받은 공양이 잘못되어 심한 이질(식중독)을 앓았다. 고령인데다 금식을 자주 했었기에 장이 매우 약한 탓이었다. 병이 위독함을 깨달은 붓다는 최후의 목욕을 마치고 사라(沙羅)나무의 숲속으로 들어가 북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갠 다음 밤중에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폈다. 이후 쉬지 말고 수행에 임할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조용히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였다. 유골과 사리는 왕후, 귀족들이 분배하여 각자의 나라에 가지고 가서 탑파를 세우고 봉양하였다.
“
스스로를 섬으로 삼아 스스로에 의지하며 살아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진리를 섬으로 삼아 진리에 의지하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 — 《대열반경》
생몰년
석가모니의 생몰년도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주류 역사가들은 대체로 그가 기원전 563년 무렵에 태어나 기원전 483년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불교에서는 부처의 탄생과 반열반을 기원전 624년 ~ 544년으로 보고 있는데, 불교에서 사용하는 달력 체계인 불기가 석가모니가 탄생한 해가 아니라 빠리닙바나(반열반)에 든 해부터 계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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