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중창불사

(2)
[백과사전] 상원사의 역사 상원사(上院寺) 창건연대는 뚜렷하지 않으나 세조(世祖)가 이 절에 거동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고려시대 성찰(盛刹)로서 조선시대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398년에 조안화상(祖眼和商)이 중창(重創) 하였으며 세조 8년(1463)에는 왕이 직접 거동하였고 곧이어 중창불사를 행했으며 효령대군의 원찰이 되었다. 순종 원년(1907) 왜병이 이 지역에 집결해 있던 의병을 소탕하기 위해 불을 질러 법당만 남겨놓고 모두 타 버렸는데 1918년에 주지 최화송 화상과 화주 차상원이 큰방을 복원하였다. 이어 1934년에 주지 최경언이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타버렸다. 1969년 주지(住持) 덕송(德松)이 초막(草幕) 삼 칸을 짓고 복원에 착..
[백과사전] 송광사의 역사 송광사(松廣寺) 신라 말 혜린대사(慧璘大師)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길상사(吉祥寺)로 작은 규모의 절이었다. 이후 고려 인종 때 석조대사(釋照大師)가 절을 확장하려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이다. 이때 고려 희종이 길상사를 수선사(修禪社)로, 송광산을 조계산(曹溪山)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그 동안 정유재란, 한국 전쟁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