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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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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종용록 종용록 《종용록(從容錄)》 또는 《종용암록(從容庵錄)》은 중국 불교의 선종의 선어록(禪語錄)으로, 원명은 《만송노인 평창 천동각화상 송고 종용암록(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尙頌古從容庵錄)》이다. 중국 선종5가(禪宗五家)의 일파인 조동종(曹洞宗)에 속하며 묵조선(默照禪)의 시조인 천동산(天童山)의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이 고칙(古則: 후인의 수행의 규범이 될만한 옛 사람(古人)의 언구) 100칙을 골라 여기에 송고(頌古)를 붙였는데 이것이 〈굉지송고(宏智頌古)〉이다. 그 후 같은 조동종의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가 1223년(嘉定16)에 〈굉지송고〉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시중(示衆) · 저어(著語) · 평창(評唱)을 가한 것이 본서이며, 그 평창을 쓴 장소가 종용암(宗容庵)이었기 때문..
[백과사전] 무문관 무문관 《무문관(無門關, The Gateless Gate)》은 선종5가(禪宗五家)의 일파인 임제종(臨濟宗)에 속하는 남송(南宋)의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가 1228년(紹定 1) 46세 때의 여름에 푸저우(福州) 영가(永嘉)의 용상사(龍翔寺)에서 수행자를 위해 고칙 48칙(古則四八則)을 염제(拈提: 고칙을 제시하여 이를 평창함)하고, 평창(評唱)과 송(頌)을 가해서 《무문관》이란 제목을 붙이고, 자신의 찬술이유(撰述理由)를 말한 자서(自序)를 가하여 그해 겨울에 간행하였다. 《벽암록》·《종용록》과 함께 옛날부터 선림(禪林)에서 존중되었으며, 이 두 서적보다 공안(公案)의 수가 적고 내용도 간단명료하며 더욱이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사상적으로도 일관성(一貫性)이 있기 때문에 일반에게 ..
[백과사전] 만송행수 만송행수 萬松行秀 (1166∼1246) 금나라 시대의 불교승. 조동종(曹洞宗) 청원(靑原)하의 23세(世) 선승(禪僧). 하내(河內:河南省)에서 출생하여 자주대명사(磁州大明寺)의 설암만(雪巖滿) 아래에서 대오(大悟)하고 뒤에 만송헌(萬松軒)을 지어 여기에 자적(自適)하였다. 장종(章宗)의 귀의를 받고 여러 큰 절에 머물다가 뒤에 종용암(從容庵)에 은퇴하여 굉지(宏智)의 백송(百頌)을 평석(評釋)한 을 저술하였다. 엄격한 수선(修禪)에 정진함과 동시에 화엄교학에도 정통하였고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儒學)과 기타 제학(諸學)에도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문하에는 종윤(從倫)·복우(福祐)·이순보(李純甫) 등이 있다.
[백과사전] 종용록 從容錄 종용록 정확히 말해서 이라 하며, 중국 선종5가(中國禪宗五家)의 일파인 조동종(曹洞宗)에 속하는 천동산(天童山)의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이 고칙(古則:後人修行의 規範이 될 만한 古人의 言句) 100칙을 골라 여기에 송고(頌古)를 붙였는데 이것이 굉지송고(宏智頌古)이다. 그 후 같은 조동종의 만송행수 (萬松行秀, 1166∼1246) 가 1223년(嘉定16)에 굉지송고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시중(示衆)·저어(著語)·평창(評唱)을 가한 것이 본서이며, 그 평창을 쓴 장소가 종용암(宗容庵)이었기 때문에 종용암록(從容庵錄)이라고 이름지었다. 즉 굉지송고가 의 설두송고(雪竇頌古)를 본받은 것처럼 만송(萬松)의 평석(評釋)도 원오(圓悟)의 것을 본뜬 것으로 간주되며, 옛날부터 이 두 저서는 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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