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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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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상원사의 역사 상원사(上院寺) 창건연대는 뚜렷하지 않으나 세조(世祖)가 이 절에 거동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고려시대 성찰(盛刹)로서 조선시대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398년에 조안화상(祖眼和商)이 중창(重創) 하였으며 세조 8년(1463)에는 왕이 직접 거동하였고 곧이어 중창불사를 행했으며 효령대군의 원찰이 되었다. 순종 원년(1907) 왜병이 이 지역에 집결해 있던 의병을 소탕하기 위해 불을 질러 법당만 남겨놓고 모두 타 버렸는데 1918년에 주지 최화송 화상과 화주 차상원이 큰방을 복원하였다. 이어 1934년에 주지 최경언이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타버렸다. 1969년 주지(住持) 덕송(德松)이 초막(草幕) 삼 칸을 짓고 복원에 착..
[백과사전] 금당사의 역사 금당사(金塘寺) 금당사는 고구려 보장왕 때의 열반종의 종조 보덕화상의 제자인 무상화상과 김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 중기의 지리서에는 금당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확실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마이산에는 상원사, 혈암사, 쇄암사만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바, 이 중 어느 것이 금당사의 전신인지 또 언제 현재의 자리에 건립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금당사는 매우 퇴락하여 1978년에 지장전을 중건하였고 뒤이어 대웅전과 삼성각을 중건하였다.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이고 팔작 기와지붕이며, 지장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이고 맞배기와지붕이며, 삼성각은 전면 3칸 측면 2칸이고 맞배지붕으로 건립되었다. 금당사에는 괘불탱화, 목불좌상,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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