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국사 의천 (2)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과사전] 불교는 고려 불교는 고려 불교는 고려의 국교였는데, 고려는 국교로서의 불교 이외의 도교, 유교, 무속신앙과 같은종교를 금지하지 않았으며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태조 이래 불교를 국교로 숭상함으로써 수도 개성을 위시하여 전국에 많은 사찰이 있었으며 신하뿐 아니라 왕가에서도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일이 허다하였다. 고려에서는 불교가 지극히 숭상됨에 따라 승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져 광대한 사원전(寺院田)을 차지하고 세속적인 인권도 대단하였다. 승려는 사유재산을 소유하기도 하였다. 선종과 교종 모두에서 체계적인 승려 제도가 있었고 왕의 스승인 왕사와 나라의 스승인 국사는 크게 존중받았다. 이에 따라 위대한 사상가 또는 스님도 많이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대각국사 의천 · 보조국사 지눌 · 태고 보우이다. 고려의 .. [백과사전] 흥왕사의 역사 흥왕사(興王寺) 고려 문종 10년(1056년)에 짓기 시작, 12년 만에 낙성된 대사찰이다. 문종 21년(1067년)에 낙성연등회(落成燃燈會)가 있었으며, 대각국사 의천이 이곳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여 《속장경》을 간행했다. 의천이 제1대 주지이며, 제2대 주지는 숙종의 넷째 아들로서 승려가 된 징엄(澄嚴)이었다. 1363년(공민왕 12년) 음력 3월에 이 절에서 공민왕을 시해하려는 음모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홍건적이 대거 침입하자 공민왕은 잠시 복주(福州) 청주(淸州)로 피신했다가 환도하여 잠시 흥왕사에 행궁을 차리고 있었다. 그때 왕의 신임이 두터웠던 김용(金鏞)이 역심을 품고 무리들과 함께 이 절에 침범하여 시위를 죽이고 왕까지 시해하려 하였다. 공민왕은 다급히 태후 밀실로 피신하였고, 노국..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