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華嚴寺)
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왕 22년)에 연기가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자장법사가 증축하였고, 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 · 7층탑 · 석등롱(石燈籠) 등을 건조하였다.
《봉성지》(鳳城志)에 따르면, 문무왕 때 의상국사가 왕명을 받아 석판에 《화엄경 80권》을 새겨 절에 보관하였다.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이 다시 증축했다.
고려시대에도 중수가 잇따랐다. 943년(고려 태조 26년)에 도선의 유지에 따라 오백선찰을 먼저 건립하고 뒤에 삼천팔백사를 세우는 일을 시작하면서 기존 사찰 중 화엄사가 제일 먼저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광종대, 문종대, 인종대, 충숙왕대에 걸쳐 총 네 차례에 걸친 중수가 더 있었다.
화엄사에는 벽(壁)을 청석(靑石)으로 두른 전각이 있었고 이 청석에 화엄경이 조각되어 장육전(丈六殿, 부처의 키가 6척이었다는 설에서 유래한 이름)에 보관하였으나 임진왜란 중인 선조 26년(1593년)에 불타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지금도 간혹 청석 조각을 볼 수 있는데 당나라 초기의 글씨체를 보인다고 한다. 벽암선사가 인조 8년(1630년)부터 14년(1636년)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한 일부 건물을 재건하였고, 재건 후에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그외 대부분의 건물은 17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숙종 27년(1701년)에 화엄사 중건을 완성하고 선교 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大伽藍)으로 하였다.
중요 건물은 대웅전 이외에 각황전(覺皇殿) · 보제루(普濟樓) · 명부전(冥府殿) · 원통전(圓通殿) · 영산전(靈山殿) · 응향각(凝香閣) · 적묵당(寂默堂) · 금강문(金剛門) · 천왕문(天王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