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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요 사찰 정보/부인사

[백과사전] 부인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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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符仁寺)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7세기 초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현재 부인사에는 신라 선덕여왕의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신무동 주민과 사찰측 및 경주 김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제를 지내고 있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에 부인사는 대구 팔공산에 위치한 대규모 사찰이었고, 승려가 2000여 명에 달했다. 국내 유일의 승시(僧市)가 부인사에 개설되었다. 초조대장경의 판각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현종(顯宗) 4년(1013년)경부터 판각되기 시작해 숙종(肅宗) 4년(1099년)에 완성되었다. 총 1만 여 권의 초조대장경은 여왕사, 개국사 등을 거쳐 부인사에 봉안되었고 여러 번의 인간(印刊)이 있었다. 그러나 고종(高宗) 19년(1232년) 몽골의 제2차 침입 때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과 함께 불타버렸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다시 전소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래 부인사가 있던 절터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를 올라와서 암자가 있던 터에 현재 부인사를 중창하였다. 원래의 부인사가 있던 절터에는 포도밭이 들어있다, 부인사가 경사진 산 비탈에 있었기에 건물터마다 축대를 쌓아 땅을 평평하게 하여 건물을 지었는데 현재는 건물은 없고 건물터마다 포도 밭이 들어서있다.

현재 부인사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에 금당좌로 추정되는 유적이 남아 있다.

6.25 전쟁 때 다시 불탔고, 이것을 1959년에 중건하였다.

현재 부인사 경내의 당우로는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한 대웅전과 선덕여왕의 어진을 모신 선덕묘, 2동의 요사채가 있다. 이 밖에도 주춧돌, 화려한 문양의 장대석(長臺石)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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