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불교의 중흥도량
봉은사(奉恩寺)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암(見性庵)이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연회국사는 영축산에 은거했던 고승으로 원성왕에 의해서 국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견성암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 들어 견성암은 수도산 아래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이름도 봉은사로 고쳐 부르고 당시 불교중흥의 중심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성종의 아들이었던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지만 기행과 폭정을 일삼다가 이복동생이었던 진성대군의 반정으로 물러나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이다.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특별히 봉은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중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붕어하자 다음 왕위에 오른 사람이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다.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이후 8년 동안 문정왕후가 섭정을 하게 되는데, 8년의 섭정이 끝난 후에도 한 동안 문정왕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 기간 동안 문정왕후는 폐지된 승과고시를 부활해서 봉은사에서 승려를 뽑는 승과고시를 치르게 한다. 또한, 당대 고승인 보우대사를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는 한편 봉은사를 선종 수사찰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후 승과고시를 통해 배출된 서산, 사명, 벽암 등의 고승들이 연이어 이곳 봉은사의 주지를 역임하면서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봉은사를 중심으로 조선불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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